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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우리밀영농조합법인 최성호 대표

“우리밀살리기 20년의 자구노력 경험으로 식량무기화에 대비할 때입니다”

기사승인 : 2012-03-01 15:59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전남 구례의 6월은 황금빛 들판으로 가득하다. 구례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우리밀살리기 운동으로 우리밀이 수확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구례우리밀영농조합법인 최성호(70) 대표는 1990년부터 우리밀살리기운동을 통해 식량자급, 친환경농업, 도농상생을 실천하고 있다. 최성호 대표를 만나 우리밀과 한국 농업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농민운동 1세대, 우리밀 살리기에 전력하다

   
 
최성호 대표는 한국 농민운동 1세대이다. 카톨릭농민회 전남지회장(1983~87년)과 전국부회장(1990년)을 지내면서 민주화 운동과 농민권익을 위한 투쟁을 해왔다. ‘잡혀 들어가기’를 수십 차례 했다는 최 대표에게 전환점이 오게 된다. 
1990년 한국카톨릭농민회 1세대들이 대전 카톨릭농민회 회관에 모여 고향으로 돌아가 국민 모두가 함께하는 사람답게 사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때 결의한 것이 (1) 더불어 사는 운동(도농상생) (2) 생명운동(무농약, 친환경유기농산물 생산), 우리밀 살리기 운동(종자 30만 가마 확보)이었다. 
최성호 대표는 고향인 구례에 밀 종자 14kg을 가지고 돌아와 200평 밭에 밀을 파종했다. 종자 30만가마(40kg)만 확보한다면 어떤 식량위기가 오더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정부는 1984년부터 밀 수매를 중지하게 되면서 국산 밀가루의 1/6밖에 안되는 수입밀가루가 국내시장을 장악하자 우리밀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줄게 된다. 그렇게 되자 우리밀 생산 농민들이 밀 파종을 하지 않아 종자 구입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우리밀 살리기에서 우리밀 산업으로

   
 
최 대표가 우리밀 파종을 하기 시작한 1990년 당시 구례에는 특용작물, 비닐하우스, 오이 생산이 평당 5만원의 고소득을 올린 반면 우리밀은 평당 1,500원의 수익밖에 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농민들은 밀 생산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최 대표는 우리밀 농사를 망설이는 농민들에게 우리밀 생산의 필요성에 대해 설득하기 시작하면서 밀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설득하고 생산하고 나니 이를 처분하기 위한 제분시설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국에 소형 제분시설을 찾아보았으나 그 흔적마저 없었다. 대한제분, 동아제분 등 대형 수입밀 제분회사처럼 수백억 규모의 시설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자본도 없고, 제분 경험도 없어 고민하던 최 대표는 외부지원을 위해 전남도에서 주관하는 1읍면 1특품사업단 사업에 신청했다. 그러나 전남도청은 우리밀은 특품사업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는다. 최 대표는 도청 담당자를 수 차례 만나 사업의 타당성을 설득하여 결국 1억4천만원(자부담 5천만원)의 사업비를 받아 창고, 제분시설, 국수기계, 누룩기계 등을 구비한 우리밀가공공장을 설립하게 된다. 
1993년부터 전국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에 납품을 시작했으나, 밀가루의 찰기가 부족하고 거칠어서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받지 못하는 등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후 1994년 3억원을 재투자하면서 제분 롤러밀, 흔들체 등을 설치하여 품질향상에 힘썼다. 또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조금씩 커지면서 구례, 무안, 합천, 정읍, 아산 등 5곳의 가공공장에서 우리밀이 생산되었다. 그러나 1997년 IMF로 인해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가 부도나면서 구례를 제외한 모든 공장이 폐쇄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최성호 대표는 구례공장만 남은 상황에서 생산, 가공, 유통을 우리 힘으로 해결하는 제2의 우리밀살리기 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동안 전국 우리밀살리기운동으로부터 위탁ㆍ가공만 하던 상황에서 생산ㆍ수매ㆍ가공ㆍ판매를 독자적으로 수행하게 되었다. 
2001년 우리밀 생산이 거의 없던 상황에서 2002년 2,500가마, 2003년 5,000가마의 우리밀 생산이 다시 시작되었다. 2007년에는 자부담 11억5천만원을 포함한 총20억원의 사업비로 시설현대화하고 규격화하여 1일 제분 300가마, 년 4,000톤의 제분시설을 갖추면서 밀가루 품질을 향상시켜 수입밀과 경쟁할 수 있게 되었다.


맛있는 우리밀, 안전성면에서 수입밀과 비교불가

   
 
현재 구례에는 300여명의 농민들이 350ha의 농지에서 3만가마의 밀을 생산하고 있고, 우리밀가공공장은 전국에서 생산된 우리밀만을 가공하는 유일한 공장이다. 
이렇게 생산된 제분(밀가루), 국수, 통밀라면, 건빵 등 우리밀 가공제품은 두레생협, 아름다운가게, 우리농(카톨릭농민회) 등에 출시되며, 대기업인 사조해표에 OEM으로 공급되고 있다.
“우리밀은 겨울작물이기 때문에 농약을 일절 주지않는 건강한 먹거리입니다. 반면에 수입되는 미국밀은 그들이 먹다남은 잉여농산물이고, 배타고 오는 20~40일을 견디기 위해 각종 농약, 방부제, 살충제가 범벅입니다. 현명한 소비자라면 어느 것을 소비하겠습니까?”고 우리밀의 안전성을 강조했다. 이와 덧붙여서 “우리밀과 수입밀을 같이 쥐 앞에 놓으면 그 쥐는 우리밀만 먹습니다. 우리밀은 일주일만 두면 바구미가 생기는데, 수입밀은 바구미가 전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밀가루가 맛이 없다는 데 대해서는 “과거 제분시설이 열악한 상태에서 가공한 우리밀가루에 대해 애국심만으로 찾았던 소비자들은 껄끄러운 식감에 실망해 다시는 찾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요새 나오는 우리밀가루는 노르스름한 색에 맛 또한 수입밀가루보다 좋습니다.”면서 맛에 대해서도 자신한다.


농업은 지역경제와 고용효과를 살리는 최적의 산업, 자급정책에 초점을 두어야
마지막으로 최성호 대표는 한국 농업에 대해 뼈있는 한 마디를 한다.
“농업은 햇빛, 공기, 물, 흙과 같은 자연에서 농부의 노동력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행위입니다. 이 과정에서 농약, 비료 등 농자재를 구매하면서 중소기업과 지역경제도 활성화되고 고용증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농산물을 미국에서 수입하게 되면 우리의 자원을 포기하고 미국의 자원을 갖다 먹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농산물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국제곡물가격이 급등할 때 정부의 정책은 농산물 수입확대였습니다. 외국 농산물 수입확대는 소비자가 왕 노릇을 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이로 인해 농업은 점차 몰락하고 있습니다. 
지금 벼농사, 밀농사를 하는 농업인들은 대부분 65~70세입니다. 4~5년이 지나 이들이 은퇴하면 우리나라 벼농사, 밀농사는 누가 할까요. 지금까지의 농업정책이라면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서 부족한 농산물을 외국에서 전량 수입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소비자는 지금보다 더 비싼 가격에 사 먹을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될 겁니다.
농업의 정책목표는 자급이 되어야 합니다. 농정당국은 우리 땅에서 우리 국민이 풍요롭게 먹고 살 수 있는 자급정책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밀가공공장은 우리밀의 생산ㆍ가공ㆍ유통을 일원화하여 우리밀 살리기를 위한 성장동력의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우리밀은 정부의 밀 정책이 없었던 20여년 동안 자구 노력을 통해 품질을 크게 향상시켰으며, 수입밀에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었습니다. 
지구촌의 기상재해로 식량부족과 국제곡물가격 폭등으로 인한 먹거리의 안정적 생산과 공급을 저희는 20년 경험을 살려 2모작 땅에 밀을 심어 식량 무기화에 대비할 것입니다.”
최성호 대표는 밀 파종부터 수확ㆍ가공까지 모든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시설을 구상중이다. 내년 6월까지 우리밀 체험시설이 완성되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밀의 소중함을 알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김신근 기자  pli004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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