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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의 해에 다시 생각해보는 농업정책

기사승인 : 2012-08-01 17:22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최  정  섭
(영남대 객원교수,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2012년은 대선의 해이다. 대선을 염두에 둔 후보들의 농업정책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염두에 두고 농민의 ‘희망’과 ‘사기’를 진작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농업계로부터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대선 후보는 농업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요소가 다양하게 존재함을 파악하고 이를 활용하여, 농업에 대한 불확실성을 떨치고 희망찬 앞날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고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농업부문의 ‘희망사항’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농업의 가치를 인정하는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또한 국제곡물가격 폭등에 따른 ‘식량안보’와 기후변화 속에 미래농업을 정립시키기 위한 미래지향적이며 구체적인 농업정책도 내놓아야 한다. 농민을 포함한 농업계 유권자는 이들 후보자의 공약과 실천의지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정치의 계절과 농업 큰 그림

대선의 해를 맞아 바야흐로 농(濃)익은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농업에서 정치논리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금년만은 예외라고 쉽게 말할 것 같다. “지난번 대선에서는 농업 문제가 아예 거대담론에서 제외되었다. 표가 되지 않는다는 정치권의 단견때문이었다”라는 평가도 있지만1), 농민의 숫자가 줄더라도 농업을 거대 담론에서 제외시킨다면 그야말로 단견이다. 농업이야말로 국가의 지도자가 민생을 위해 챙길 ‘대통령 어젠더’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도 경제성장 과정은 뒤집어 보면 농업의 상대적 축소 과정이었다. 1970년부터 2010년까지 40년 동안 명목 가격으로 농업은 37배가량 커진 반면 전체 한국경제는 424배로 확대되었다. 이를 그대로 반영하여 농업의 비중은 26퍼센트에서 2.3퍼센트로 줄어들었다.

경이로운 경제성장은 수출산업이 주도하였다. 1964년 11월 말 연간 수출이 1억달러를 돌파하자 나라 전체에 축제 분위기가 퍼졌다. 6.25 때 우리를 도와 준 에디오피아와 비슷한 수준의 수출을 전후(戰後) 10년만에  달성하였으니 참으로 경하할 일이었고 정부는 이 날을 ‘수출의 날’로 제정하였다. 2011년 수출액은 무려 5,550억달러으로써 외국 시장에 우리 상품을 매일 15억달러씩 내다 판 것이다. 주로 수산물과 가공식품으로 구성된 농산물 수출액은 근년에 일취월장하고 있지만 전체 수출액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수출기업의 입장에서 상품을 더욱 효율적으로 팔기 위해서는 외국의 국경장벽이 낮을수록 좋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마무리함으로써 공산품의 관세는 더욱 낮추고 비관세 장벽으로 제한되던 농산물은 관세화를 도입하였다. 국내외 가격차를 반영하여 높게 책정된 농산물 관세율을 낮추기 위하여 도하개발어젠더(DDA)가 2001년 출범했지만 원래의 협상시한이었던 2005년 1월 1일은 물론 그 뒤 계속 연장된 시한도 지키지 못하고 급기야 끝을 모르는 심연에 가라앉고 말았다. DDA가 엄청난 수압을 헤치고 수면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인지 이제는  어느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DDA가 부진한 가운데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한 것이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칠레 FTA를 기점으로 이제 세계 최대의 경제권인 유럽연합(EU),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인근 거대경제국인 중국과도 협상을 진행 중에 있다. 약 10년 전만 해도 주로 농업 분야 때문에 상상도 못하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수많은 농업관련 보고서나 농정관련 문건의 서문에 “DDA와 FTA로 인한 시장 개방의 심화에 대응...”운운 하던 것은 이제 “FTA로 인한”으로 고쳐 써야 맞게 되었다. 항상 수세적 입장에 급급하던 농업분야에 짧은 기간에 기적 같은 경쟁력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상대적으로 점점 더 소수 집단이 되어 가는 농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FTA를 체결해서 그런 것일까.
체결된 모든 FTA에서 ‘쌀 예외’ 원칙은 지켜졌다. 그러나 그동안 농업성장을 견인해 온 축산업이 만만치 않은 해외 경쟁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협상중인 중국과의 FTA가 체결된다면 다른 농산물 주력 품목들이 결정타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농업관계자들이 진정으로 우려하고 있다. 농업 예외의 범위를 최대화하는 길만이 전체 국익을 위한 ‘한-중 FTA' 협상을 순항시키는 방안이다.        

 

한국 농업의 건강 진단

국민건강보험에서는 가입자를 대상으로 매년 기초적인 건강진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2년마다 기본 암검사 비용까지 부담해준다. 여유가 있거나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 진단을 통해 기본적인 건강관리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좋은 제도의 덕을 본 경험을 이야기한다.
우리 농업도 정기적인 건강진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얼마 전 무려 5천년전의 밭 유적이 강원도 고성군에서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런 정도의 진짜 ‘고령’ 농업을 예외로 치고 경제 고도성장 이후만 보더라도 우리 농업의 나이는 50대 초로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큰 비용을 들인 대대적인 정밀 진단이 한시바삐 시행되어야 할 것 같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공약(公約)이 풍성하게 제시될 텐데 우리 농업에 대해 ‘최고의 전문의를 동원한 정밀 건강진단과 처방’에 기초하여 공약을 제시하는 후보가 있다면 농업계의 애정 어린 관심을 받아야 마땅하다.    

1962년 출범한 유럽연합의 공동농업정책(Common Agricultural Policy: CAP)은 모두 4차례의 개혁을 겪었다. 그 중 2008년에 시행된 개혁은 ‘CAP 건강진단(Health Check)’ 개혁이라고 명명되었다. ‘건강진단’ 개혁은 공동농업정책의 건강을  정밀하게 진단하여 추가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목표였다.
한 나라의 농업 문제도 복잡한데, 27개국의 농업 문제를 다루는 정책을 개혁하는 것은 장기간을 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2007년 11월에 시작된 ‘건강진단’ 과정은 이듬해 11월이 되어서야 유럽정상회의의 의결을 거침으로써 완료되었다. 2008년 시행된 ‘건강진단’ 개혁의 목표는 3가지로 압축된다2). 첫째, 농가단위직불제(Single Payment Scheme: SPS)의 효율성 제고와 정책의 단순화, 둘째, 시장조치를 시장의 새로운 여건에 맞도록 개선, 셋째, 기후변화, 바이오에너지, 수자원 고갈, 생물종다양성, 낙농업, 기술혁신 등 새로운 상황과 여건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올바른 처방이 가능하다. 건강진단은 신체 각 부위와 혈액에 대한 지표를 의학적 표준치와 비교하는 것이 기본이다. 전문의의 문진을 통한 확인도 중요한 절차이다. 우리 농업에 대해서도 전문가 집단의 종합적인 진단과 그에 따른 처방이 필요한 시점인데, 우선 ‘2010 농가총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 농업의 실태를 점검해보면 다음과 같다.   
농업경영주체인 농가 수는 여전히 감소세에 놓여 있다. 이농과 자연 감소가 주요 요인인데 지금까지는 이농이 많았지만 연령구성으로 보아 자연감소가 늘어날 것이다. 2010년 농가 수는 1백 18만호로써 2000년 1백 38만호에 비해 20만호가 줄었다. 연평균 2만호 정도 감소하고 있으며 지난 10년간 7퍼센트 대의 감소율을 유지하고 있다. 전체가구 중 농가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6.8퍼센트이다. 참고로 인근 일본의 경우 4.9퍼센트이다.  

농가인구는 지난 10년 동안 약 100만명이 감소했으며 전년대비 감소율은 2010년에도 10퍼센트의 높은 수준이다. 이는 가구원수가 가구 수에 비해 빠르게 감소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농가 수 및 농가인구 감소율은 서서히 낮아지고 있다.
전국 9개도의 농가 수는 지난 5년 동안 제주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감소하였다. 감소율이 전국 평균보다 높은 지역은 전남, 전북, 경남이었으며 감소율이 전국 평균보다 낮은 도는 강원 및 경북, 그리고 경기였다.   

농가의 후계자 확보는 경영주체의 지속가능성 유지와 농업의 영속성 확보를 위해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고령화가 급진전되는 우리 농업의 현실에서 중장기적으로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통계로 본 후계자 확보 실태는 매우 저조하다. 2005년 농업총조사에서 ‘영농승계자 동거’ 항목에서 동거하는 영농승계자가 있는 농가는 3.5퍼센트로 발표되었다. 같이 거주하지 않는 자손이 영농을 승계하러 귀농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동거하는 ‘영농승계자’가 있는 경우 ‘영농후계자’가 있는 농가로 간주된다. 영농후계자 확보 비율이 4퍼센트도 못 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영농후계자를 확보한 농가가 25호 중 1호도 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농업총조사는 5년마다 실시되는데 ‘영농승계자’ 확보 비율은 1990년 16.4퍼센트, 1995년 13.1퍼센트, 2000년 10.9퍼센트로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2005 총조사에서 영농후계자 확보비율이 사상 최저로 조사되었기 때문에 추세 변화를 알고 싶어서 2010 농업총조사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2011년 발표된 2010 농업총조사에서는 ‘영농승계자 동거여부’ 항목이 빠졌다. 통계청에 문의한 결과 전문가 회의를 통해서 이 항목을 조사대상에서 삭제했다는 답변을 들었다3). 반면에 ‘영농승계자’에 대한 조사 항목은 최근 발표된 농가경제조사결과에 수록되어 있다. 농업총조사에서 뺀 항목이 농가경제조사결과에 포함된 것이다. 농업총조사는 전수(全數)조사이고 농가경제조사는 표본(標本)조사이다. 따라서 직접 비교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으며 통계적 정확도로 따진다면 표본조사가 전수조사 결과를 따라갈 수는 없다.
농가경제조사결과에 나타난 2011년도 영농후계자 확보실태를 검토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전체 농가 116만호 중 영농승계자 확보 농가는 11만 4천호로써 약 10퍼센트의 농가가 동거하는 영농승계자를 보유하고 있다. 후계자를 확보한 비율은 경지규모가 클수록, 경영주 연령이 높을수록, 농산물 판매금액이 많을수록 높게 나타났다. 또한 논벼 농가는 전국 평균과 비슷한 수준의 후계자 확보 비율을 나타냈으며, 축산과 과수농가의 후계자 확보비율이 평균보다 약간 높은 데 반해 식량작물과 특작농가의 비율은 평균보다 약간 낮게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제주가 평균보다 월등히 높고(26퍼센트), 경기도 높게(14.7퍼센트)나타난 반면 경남이 가장 낮고(6.2퍼센트) 전북과 전남이 낮게(7.3퍼센트) 나타났다. 종합적으로 보면 전남?북과 경남의 식량작물과 특작 농가의 후계자 확보 비율이 낮다.  
농가의 후계자 확보 비율이 낮은 것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농가인구의 연령별 분포 때문이다. 2010 농업총조사 결과 농가인구는 5년 전에 비해 남녀 공히 70세 이상 모든 연령층에서 증가하였다. 반면에 69세 이하 인구는 거의 모든 연령층에서 감소세를 나타내었다. <농가인구 연령별ㆍ성별 분포> 그림에서 지난 5년 동안 70세 미만 인구의 감소 실태는 파도에 침식된 해안선처럼 선 안쪽으로 줄어든 막대 그림에 나타나 있다. 이러한 연령별 인구 분포 변화의 추세를 5년 후 또는 10년 후 시점으로 연장하면 70세 이상의 인구는 더욱 증가하고 그 이하 연령층은 더욱 감소할 전망이다.

우리 농업의 경지규모는 여전히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10년 전체 농가 1백 18만호 가운데 1ha 미만의 경지를 가진 농가 비중이 65.8퍼센트로써 압도적 다수의 농가가 전국 평균에 못 미치는 경지를 보유하고 있다. 1∼2ha를 보유한 농가 비중은 19.4퍼센트이고, 2내지 3ha 규모의 농가 비중은 6.6퍼센트이다. 3ha 이상의 경지를 보유한 대규모 농가 비중은 8.2퍼센트로써 2내지 3ha 규모의 농가비중보다 많아졌다. 그만큼 대규모화가 진전되고 있음을 의미하지만 0.5ha 미만을 보유한 영세농가수가 지난 5년간 1만 5천호나 증가함으로써 경지규모의 양극화가 진전되고 있다.

농가의 농산물 판매 금액에는 우리 농가의 전반적인 영세성이 반영되어 있다. 절반을 약간 넘는 농가의 연간 판매금액이 1천만원 미만이었다. 지난 5년 동안 이 비중은 근소하게 감소하였는데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소득으로 따진다면 비중이 증가한 셈이다. 1천만원 미만은 절반 이상이 논벼위주 농가이며, 3천만원 이상은 채소, 과수, 축산위주 농가가 많다. 5천만원 내지 1억원 구간에는 채소농가, 1억원 이상 판매하는 농가에는 축산 농가 비중이 높다.
2010년 농가경제조사 결과 전국평균 농업총수입은 2천 722만원이었으며 농업경영비는 1천 712만원으로써, 경영비를 제외한 농업소득은 전국 평균 1천 10만원으로 나타났다. 전국 평균 농외소득과 이전소득(비경상소득 포함)은 각각 1천 295만원과 908백만원으로 조사되어 총농가소득은 3천 212만원으로써 도시근로자가구 소득과의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경지 규모와 연령별 농가분포, 그리고 판매금액으로 본 우리 농가는 ‘영세, 노령 가족농으로써 후계자 확보가 불충분하고 양극화’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시장의 포화와 소비자 권한 강화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쌀이 금이고, 고기가 은이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도 했고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도 했다. 시대와 장소와 정치체제는 바뀌어도 모두가 농업 생산과 공급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모든 농산물은 생산되기가 무섭게 배분되었고 때로는 농가의 식구들 먹을 것도 모자랐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즈음하여 선진국을 중심으로 농산물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달했다. 멜더스의 인구법칙을 무색하게 만든 농업생산성의 도약이 주요 원인이었다. 다수확 품종 개발, 비료와 농약 등 투입물 증대, 기계화, 공장식 생산시스템의 도입으로 농업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이를 계기로 공급자 시장이 수요자 시장으로 변화하였다.
농산물이 모자랄 때는 공급자의 교섭력이 강하지만, 수요에 비해 조금이라도 공급이 많아지면 농산물의 비탄력성 때문에 공급자의 교섭력이 급속히 약화된다. 또한 수송이 원활하지 못한 지역에서는 국지적인 교섭력 변동도 자주 일어난다. 다양한 이유로 농산물 시장의 전반적인 추세는 소비자의 교섭력이 제고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2008년의 국제곡물가격 폭등은 수요의 구조적인 팽창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중국 등 신흥국의 경제성장으로 인한 육류 소비 증가가 사료곡물 수요 증가로 연결되고, 동시에 바이오 연료용 곡물 수요가 급상승하면서 국제 곡물재고가 갑자기 감소하였다. 이에 일부 국가에서 물량을 확보하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자 단시간에 곡물가격이 전청부지로 치솟은 것이다. 공급이 수요를 추격하여 형성된 시장 포화 상태가 수요의 급팽창과 함께 재고 부족과 가격 폭등을 야기한 것이다.
곡물 이외 농산물과 축산물의 국내 시장은 기상 이변으로 인한 작황부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수요자 시장으로 변모하였다. 이러한 현상에는 농산물 유통의 커다란 변화가 미친 영향도 매우 크다. 즉 농산물 도매시장의 수집과 가격형성기능이 대형 소매점의 성장으로 인해 품목별 구매책임자(바이어)를 통한 조달과 가격 결정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구매책임자는 국내 농업의 생산물뿐만 아니라 해외 공급까지를 조달 수단으로 보유하고 있는데다가, 생산자에 비해서 월등한 자본과 정보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소비자 접점인 매장(賣場)을 통제하고 있어 교섭력이 비대칭적으로 높다.

 

시장 여건의 변화와 수직적 통합 추구

교섭력이 식품가공산업과 소매업계로 이동하는 시장 여건에 대응하여 공급자가 택할 방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상품차별화를 통한 시장의 분할이다. 이 때 농가간 ‘수평적 협력(horizontal cooperation)’과 함께 ‘수직적 통합(vertical integration)’의 중요성이 커진다. 영세소농 위주인 농업구조 하에서는 작목반이나 품목조합을 통한 수평협력으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네덜란드의 성공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1차 산업인 농업과 2차 산업인 식품가공업, 그리고 3차 산업인 유통 및 서비스업적 측면이 통합하여 부가가치를 높이고 이를 농민의 소득원으로 전환시키는 '공급사슬개발 (Supply Chain Development)'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이를 ‘6차 산업화‘라고 칭하고 일본의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6차산업계(係)’를 설치하여 생산자의 가공 및 유통 활동을 촉진하고 있지만 이는 기수(基數)와 서수(序數)의 특성을 무시한 언어의 유희일 뿐이며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수직적 통합은 공급자[농장]의 대척점에 소비자[식탁]가 놓이게 되므로 변화하는 소비자 선호가 생산 및 가공 의사 결정에 자동으로 반영되도록 사슬처럼 연결된 구조이다. 따라서 시장의 확대와 매출액 증가, 운반과 저장 비용의 절감, 시장 분할과 판매목표 설정을 통해 차별화된 가격을 수취할 기반이 형성되는 것이다. 포화된 시장(레드 오션)에서는 원가보장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개별적 노력이 관건이지만, 수평적 협력과 수직적 통합 전략 하에서는 소비자 선호에 따른 차별화, 공급의 시의적절성, 규격 상품의 지속적 공급, 품질 관리 같은 요소들이 경쟁력의 결정 요인으로 등장하여 경쟁의 법칙을 생산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시킨다.      
개별 농가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 중 대부분은 수직적 조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다만 정부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고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여야 한다. 즉, 수직적 통합 또는 계열화가 농민을 중심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배려되지 않으면 부가가치를 농민의 소득원으로 전환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MB 정부의 농정

대선 당시 정당이 제시한 공약 이행 여부나 정도를 가지고 집권 후의  농정을 평가할 수는 없다. 대선 공약의 성격 상 농업정책의 기본에 충실한 정책대안 보다는 농민의 표심을 자극하여 표를 얻는 데에 비중이 두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농업에 대한 무리한 대선 공약의 사례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2년 실시된 제14대 대선을 들 수 있다. 당시 대통령 후보는 선거일을 열흘 앞두고 “다시 한번 약속드리거니와, 쌀은 절대 수입하지 않을 것이며...”라고 밝혔다4). 1986년 시작된 우루과이 라운드 농산물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러 미국과 유럽연합 사이 힘겨루기가 한창일 때다. 결국 이듬 해 협상이 타결되고 우리 쌀 시장은 ‘의무수입’이라는 형태로 빗장이 열렸다. 농산물에 대해 ‘예외 없는 관세화’ 원칙이 관철된 다자간 협상에서 ‘관세화 유예’라는 성과를 끌어냈지만 의무수입도 수입이라 선거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결과는 사회적 혼란과 총리와 농림부 장관의 경질로 나타났다. 
MB 정부 집권 후 시행한 주요 농정은 식품산업 주관 부서를 농림부로 변경하여 농림수산식품부의 발족, 농협법 개정을 통한 농협개혁, 농식품 수출 확대, 한식세계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밖에도 귀촌과 농식품분야 연구개발 확충 등 다양한 정책이 시행되었지만 여기에서는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한 상기 정책에 한정하여 검토해보기로 한다. MB 정부 농정은 집권 초기 한미 쇠고기 협상과 관련한 촛불시위, 리먼사태 후유증으로 인한 일반 경제의 부진, 2010년 말 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역으로 인하여 매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전개되었다.
주요 정책의 기본 목표를 검토해보자. 농림부를 농식품부로 개편한 것은 농민이 1차 산업인 농업 생산을 넘어서서 부가가치의 외연을 2차 가공산업, 3차 유통산업으로 확대시켜 경쟁력을 키우고 소득을 증대시키자는 취지였다. 결과적으로 점점 멀어지는 ‘농(農)’과 ‘식(食)’의 간격 축소를 추구하였다. 농외소득이 약간 증가하고 정책의 원래 취지가 일부 달성되었지만, 2차, 3차 산업으로 외연을 확장시킬 역량 있는 농민의 수는 제한되어 있고, 기존 식품산업과의 상생 관계 설정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제도 개혁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농민의 역량 강화, 제도 개선, 식품산업과의 연계강화 등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농협개혁은 MB 정부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한 정책 중의 하나이며 농협기본법 개정안이 시행됨으로써 큰 고비는 넘었다. 그러나 농협을 개혁대상으로 삼은 기본적인 이유는 경제 사업의 활성화를 통해 농민의 생산물을 잘 판매하는 데에 있었기 때문에 현행 개혁안이 이 취지에 얼마나 잘 부합하는지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필요하며 이는 시간을 요하는 일이다. 제도와 운영의 문제 사이에서 제도는 일단 개선했으니 앞으로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농식품 수출은 의욕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에 근접한 실적을 매년 달성하였다. 그러나 수출 품목의 구성을 보면 수출의 증대를 통한 우리 농산물 시장 확대와 농가소득 제고라는 기본 목표와는 거리가 있다. 2010년도 10대 수출 품목의 구성을 보면 수산물을 제외하면 담배, 주류, 설탕, 과자, 라면, 커피와 같은 가공식품이 대종을 차지하고 있으며 채소와 과일을 합쳐 농산물은 전체 농식품 수출액의 8퍼센트에 불과하다. 수출용 가공식품 생산을 위한 원료는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농산물 수입액을 증가시키고 무역수지를 악화시킨다. 따라서 수출은 액수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고 홍보하는 방식을 벗어나 내실을 기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식품도 농식품부의 소관이므로 많이 수출할수록 좋은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에서 탈피하여 외화가득률과 농가소득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서 우리 농업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한식세계화는 농업정책이라기 보다는 식품 정책이고 문화 정책적 성격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 농민들은 정부에서 우리 농업을 관심있게 챙기는 상징적인 정책으로 인식하였으며 국민들은 ‘한식세계화’하면 우리 농산물을 활용한 우리 음식의 개발 및 해외 보급과 그에 따른 농가소득 제고를 머리에 떠올렸다. 한식의 세계화가 이러한 일반적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국산 농산물을 활용한 식자재에 대한 국제적인 유통망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 이전에 한식에 대한 해외 수요가 충분히 형성되고 이를 공급할 음식점이 세계에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한식세계화는 추진주체와 목표가 불확실하여 성과를 측정하기도 어렵다. 정부정책으로 추진하기 적합한 분야였는지 재검토가 필요하다.

 

대선의 해 - ‘제로 베이스’ 농정을 구상하자

큰 산에서 길을 잃고 조난을 당하면 정상으로 다시 올라가서 길을 찾으라는 말이 있다. 위로 올라갈 수만 있으면 정상에 도달하고 모든 길은 정상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지 난마(亂麻)처럼 얽혔을 때는 기본과 정석(定石)이 중요하다. ‘제로 베이스’ 농정은 농업ㆍ농민, 농촌과 식품을 기본 대상으로 한다. 중국 문건은 농업ㆍ농민과 농촌을 ‘3농(三農)’이라 칭하지만 우리는 귀에 익은대로 ‘농업ㆍ농민ㆍ농촌’이라고 쓰기로 하자. 농업정책은 농업을 대상으로 하지만 농업을 경영하는 경제주체로써의 ‘농민’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산업정책이지만 인간을 중심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농업정책은 그 목표로 삼는 주요 지표로 ‘농가소득’을 추구한다. 물론 돈으로 안 되는 일도 많고, 돈을 유일한 목표로 삼는다면 법과 질서ㆍ문화, 인간관계 같은 상위의 목표와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 따라서 농가소득이 농민 위주 농업정책의 ‘필요’ 목표이고, 생활여건과 농촌문화 등이 ‘충분’ 목표라고 볼 수 있다.
농가소득 측면에서 농업정책의 구성 요소를 분해한다면, ‘농업’은 ‘농업소득,’ ‘농촌’은 ‘농외소득,’ ‘식품’은 ‘부가가치’의 원천이 될 것이다. 그 밖에 농가소득의 구성요소 중 점차 비중이 커지는 요소가 ‘이전소득’이며 이의 원천은 이농한 자녀의 송금 또는 국민의 세금이다. 

정책 구성요소는 서로 경쟁하는 경합 관계에 놓이기도 한다. 농업 생산요소이지만 농가의 자산인 ‘농지’에 대한 정책이 한 사례가 될 것이다. 농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농지가 경작 농민의 소유 하에 안정적으로 보전되고 지가(地價)도 낮게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농지의 소유주인 농민은 자산가치 실현을 위해서나 전업(轉業)을 위해 농지를 더욱 자유롭게 처분하고 지가도 높아지는 것을 원한다. 다른 사례로 식품가공산업과 농업의 사이에도 협력보다는 경합 관계가 쉽게 발생한다. 식품가공산업이 발전하면 품질이 균일한 원료농산물을 대량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공급받기를 원하게 된다. 국내 농업은 규모가 영세하고 분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비가 높아 식품산업의 원료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식품산업은 국제 시장에서 원료를 조달하게 되고 품질ㆍ가격ㆍ공급물량ㆍ타이밍 측면에서 경쟁할 만한 국내산 원료의 공급자는 점점 더 찾기 어렵게 된다.
식품 소비 패턴은 ‘가공식품 증가’ ‘수입 농산물 증가’ ‘외식 증가’ 방향으로 급속히 바뀌어 점차 국내산 농산물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열량구성비는 서구식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세대간 소비 패턴의 격차도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국민의 영양 불균형과 생활습관병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신토불이’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우리 땅에서 나는 음식료품만 먹고 살 때는 없던 생활습관병이, 비만(肥滿) 현상과 함께 우리 곁에 자리 잡아가고 있다. 농민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소비자를 위해 농정 방향이 새롭게 설정되어야 한다.    
‘제로 베이스’ 농정은 우리나라가 기본적으로 농산물 수입국이라는 관점에서 모든 여건을 실용적으로 검토하여 수립해야 한다. 농산물 수입국은 시장 개방의 확대에 반대하는 것을 기본 입장으로 국제 농업협상에 임한다. 그러나 농정의 기조는 시장개방에 대응하는 것을 기본적인 접근 방향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즉, 국내 시장에서 경쟁력과 수입대항력을 기르고 이를 바탕으로 외국시장까지 공략하는 것을 추구하여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농정의 기본 목표를 각 구성요소에 따라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농업 : 시장 개방에 대응한 농업경쟁력, 지속가능성 확보
농민 : 적정 수준의 농가 소득 달성 및 농업경영 주체의 확보
농촌 : 농민 포함, 국민의 정주여건 개선과 어메니티 보전 및 소득원화
식품 : 소비자 안심과 식량 안보

‘어떤 품목은 경쟁력이 없고, 어떤 품목은 경쟁력이 있고...’ 하는 식으로 품목별 경쟁력을 따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다자간 협상이 타결되면 그 결과에 대한 국별 이행계획서 (Country List:CS)는 품목별로 세분하여 작성된다. 양자간 협상은 아예 품목별로 진행된다. 양허 수준은 품목별 경쟁력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협상은 정부 간 행위이기 때문에 품목별 경쟁력은 담당 공무원에 의해서 판정된다. 이 때 주로 참고하는 지표는 가격, 즉 국내외 가격차이다. 국내가격은 국내시장 수급 상황에 따라 좌우되고, 국제가격은 국제시장에서 결정되는데 이를 단순 비교하여 결정되는 경쟁력은 실제와 다를 가능성이 크다. 더욱 큰 문제점은 상품코드만 따져서 동종 상품이라고 간주하고 비교하는 데에 있다. ‘경쟁력 있는 농민은 무슨 품목을 심어도 경쟁력 있다’는 말이 있다. 선진국의 직불금도 점차 농가 단위로 바뀌고 있다. 품목은 작물과 축산물 주요 품목 정도만 구분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농가 단위로 경쟁력 제고를 지원하되 경쟁력 강화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농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 농업의 희망,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약 40년 전만 해도 국민 대다수가 손가락에 소금을 묻혀 이를 닦고 겨울에도 찬물로 세수했다. 아이들은 못 먹어서 얼굴에 버짐이 피고, 목욕은 기념일에나 하던 연중 행사였다. 해마다 겨울이면 연탄가스에  인명이 희생되고, 무서운 보리고개를 넘기 위해 시장에서 주운 복어 내장을 끓여 먹고 희생당한 소식을 신문 사회면에서 보면서 살았다. 
이제 우리 국력은 아프리카ㆍ아시아ㆍ중남미 등 지구 상 개도국들에게 원조를 주는 수준에 도달하였다. 국제개발협력기구(OECD) 내에서도 외국에 무상원조를 주는 회원국만 가입하는 개발협력위원회 (DAC)에 가입하여 우리가 대외 원조를 주는 국가라는 것을 온 세상에 공식적으로 알렸다. 많은 개도국들은 우리나라의 농업기술 전수를 기다리고 있으며 농업기반 시설 건설과 관련한 원조를 요망하고 있다. 농업의 비중이 높은 개발도상국으로써는 농업과 농촌의 발전이 국가적 급선무이며 우리나라 농업의 발전 과정에서 뭔가 배우려는 마음이 충만하다.
우리 농업은 고도 경제성장 과정에서 선도적 역할은 수행하지 못하였지만 나름대로 성장해왔다. 즉, 1970년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명목성장률 9.7퍼센트를 달성하였으며 동기간 생산자물가지수가 연평균 6.8퍼센트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실질 성장률은 매년 2.9퍼센트에 달한다. 기상이변에 따른 풍흉을 감안하면 상당한 성장률을 꾸준히 달성한 것이다. 
우리 농업은 도시 공업 분야에 매년 엄청난 인력과 토지를 제공함으로써 국가 성장과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농업 인력과 농지는 감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농업생산은 오히려 증가하였다. 비록 국민이 요구하는 열량을 다 공급하지는 못하였지만 자원이 감소하는 현실 속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전체 경제의 급속한 성장은 농업의 상대적 위축을 가져왔으며 농산물 시장 개방은 농산물 가격의 인상을 제약하고 교역조건은 나빠져서 농민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러나 우리 농업은 향후 발전할 저력을 가지고 있고 희망을 가질만한 원천도 갖추고 있다. 

▶ 희망의 원천 1 :  수출주도형, 고도성장 과정에서 농업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농업의 절대적 중요성은 불변이다. 사람은 누구나 먹어야 살고 소득이 높아질수록 고품질, 안전 식품을 찾게 된다. 안전한 농산물은 농업을 통해 생산된다. 아울러 정주공간으로써 농촌의 가치도 소득과 함께 높아진다. 이는 농업의 가치와 직결되며 우리로 하여금 농업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하는 첫번째 원천이다. 

▶ 희망의 원천 2 : 우리나라의 농업관련 인프라는 장기간의 투자를 통해 상당히 갖춰졌다. 1949년 농지개혁을 근간으로 만들어져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변화해 온 농지제도도 농업을 뒷받침하는 초석이다. 많은 개도국에서 농지가 소수의 상층 지주계급에 집중됨으로써 농업정책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 공공기관, 농협 조직은 농업발전을 위해 요구되는 업무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러한 농업관련 제도와 조직은 농업 희망의 중요한 원천이다.

▶ 희망의 원천 3 : 농촌은 민족 문화의 뿌리이다. 또한 농촌은 농민의 소득원(所得源)으로 전환할 수 있는 어메니티(농촌다운 쾌적성)의 보고(寶庫)이다. 소득의 증가에 따라 농촌의 가치는 상승하고 있으며, ‘5도2촌(도시에서 거주하며 주말에 농촌을 방문하는 주말형)’, ‘5촌2도(농촌에 거주하며 주말에 도시에 가서 즐기는 주중형)’, 심지어는 ‘7촌(농촌에 거주하며 한달 또는 분기에 한번 도시 나들이)’ 같은 다양한 형태의 농촌거주자가 생겨나고 있다.

▶ 희망의 원천 4 : 농업의 외연적 범위가 농식품산업으로 넓어질 뿐만 아니라 시장개방의 심화에 따라 외국시장도 커진다. 농업이 질적으로, 또 양적으로 팽창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장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 소비자가 원하는 농식품을 생산하여 공급하는 경쟁력 있는 농민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농식품 시장의 확대가 희망의 원천이며 노력하는 농민 1인당 시장은 갈수록 커진다.  

▶ 희망의 원천 5 : 우리나라 소비자는 우리 농산물을 선호한다. 제대로 된 한정식집 주인들은 제철 우리 농산물을 구하기 위해 새벽잠을 설친다. 손님이 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정식집 주인들은 ‘식’과 ‘농’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실질적으로 노력하는 분들이다. 식품가공산업의 발전과 식품공급사슬의 확장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간격을 더욱 떨어지게 만든다. 농민들은 희망의 원천인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희망의 원천 6 : 도시민은 우리 농업을 지지하는 주력부대이다. 도시민 조사 결과 ‘농업이 공익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90퍼센트에 달한다. ‘농업은 중요하다’라고 생각하는 도시민 비율도 80퍼센트를 넘는다. ‘농업을 위해 추가로 비용을 부담할 의사가 있다’는 데에 동의하는 도시민 비율은 50퍼센트를 넘는다. 과거 조사 때보다는 낮아졌지만 여전히 다수의 도시민이 농업은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중요한 산업이며 농업을 위해 추가로 비용을 부담할 의사가 있다. 이들이 희망의 원천이다.

▶ 희망의 원천 7 : 우리 농업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원천은 우리 농민 그 자체이다. 우리 농민은 고도 경제성장기에 인적 자원과 토지를 도시-공업 분야에 공급하면서도 농업생산성을 높이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국토와 경관을 관리하며 우수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민족 문화를 전승하는 데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여건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농업을 경영하고 있는 우리 농민이야말로 희망의 원천이며 희망의 주체이다.  

맺는 말 : 정치의 계절에 한국농업 희망 찾기

우리 농업에는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원천적 요소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농민으로 하여금 이러한 원천을 인식하고 활용하여 불확실성을 떨치고 희망찬 앞날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지도자를 선택하면 희망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희망사항’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농업의 가치를 인정하는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농업ㆍ농민ㆍ농촌ㆍ식품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범(汎)부처적으로 접근하여야 하는 사안이 많다.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며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 중에서도 ‘대통령 어젠더’가 되어야 하는 중요한 분야가 농업이다. 국제 곡물가격이 천정부지 치솟는 분위기 속에서 기본적인 ‘식량안보’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 속에서 미래의 농업을 어떤 방향으로 정립시켜 나가야 할 것인지는 중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정 최고 책임자의 과제임에 틀림없다.
‘대통령 어젠더’로써의 농업정책은 주요 사안에 중점을 두는 것이 효과적이다. 유럽연합이 ‘농가소득을 보전하기 위한 직불제’와 ‘농촌개발’ 2가지만 유럽연합 차원의 농업정책으로 운영하고 나머지 정책은 27개 회원국 정부가 재량을 가지고 수립, 집행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농정의 단순화’는 유럽연합이 공동농업정책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목표 중의 하나이다. 이의 일환으로 유럽연합은 품목별로 지급하던 소득보전 직불금은 농가단위로 단일화하여 지급하는 제도를 채택하였으며, 농정의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도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중요한 몇 가지 정책을 선별적으로 관리하고 나머지는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통령 어젠더’로써의 농업정책은 농민의 사기(士氣)를 진작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농민은 먹을 거리를 생산하는 일과 농촌경관을 관리하는 일에 대해 제대로 보상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미국에서 농산물이 과잉 생산되어 휴경보상제를 처음으로 실시할 때 농민들이 ‘우리는 생산자이므로 생산에 대해 보상을 받고 싶다. 휴경한다고 보상받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며 거부 운동을 한 적이 있다. ‘대통령 어젠더’로써의 농업정책은 농민에게 종사하고 있는 직업에 대한 긍지와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농업은 자연에 크게 의존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과는 관계없이 풍흉의 변화가 심하다. 아울러 농산물을 수요와 공급의 탄력성이 적어서 물량의 미세한 변화도 시장가격의 큰 변동으로 이어진다. 가격이 폭락할 때는 방치해두고, 가격이 오르면 물가 차원에서 단속에 나서고 외국 농산물을 긴급히 수입하는 것은 농민의 입장에서는 수긍하기 어려운 공권력의 행사이다. 요즘은 농업생산액이 증가해도 농가소득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농가판매가격’에 비해 ‘농가구입가격’이 더 크게 올라서 ‘농가교역조건’이 악화됨으로써 생기는 현상이다. 다시 말하면  농민들이 생산해서 파는 농산물가격에 비해 농가가 생산을 위해 구입하는 투입재 가격이 더 빨리 오른다는 것이다. 원자재가격 상승은 국제적인 현상이어서 효과적인 대응책이 적지만 예를 들면, 공동구매나 적시구매, 세금감면 등을 통해서 교역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대통령 어젠더’로써의 농업정책은 농민과 소비자를 동시에 고려하여야 한다. 소비자는 농민의 희망의 원천이기 때문이며 소비자 수요를 충족시킴으로써 시장을 통해 농민의 기본소득 문제가 해결되고 나머지를 농외소득과 이전소득을 통해 보충하는 것이 바람직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식생활 패턴은 급속히 ‘서구화’와 ‘외부화(외식의 증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필연적으로 농산물 수입의 증가를 초래한다. 우리 농업이 전통적으로 생산해 온 품목들과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농산물 간에 간격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철학을 가지고 생산과 소비 양쪽의 진행 방향을 조정해야 해결할 수 있는 과제이다. 생산한 농산물의 판로와 가격에 애로가 큰 농민들과 안전하고 우수한 식품을 소비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을 묶어 ‘식단을 책임지고, 냉장고를 관리해주는 농민’ 같은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개별 농민이 개별 소비자를 상대할 수는 없으므로 생산자단체가 소비자 단체와 제휴하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도 및 재정적 지원을 담당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것이다.  
정치의 계절을 맞아 가장 주의해야 할 일은 농업에 대한 지나친 정치논리의 적용이다. 농업은 경제다. 식량안보와 지역발전이 중요하고 식품의 수요와 공급에는 경제원리의 적용이 제한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농업의 기본은 경제라는 점을 간과하고 지나친 정치논리를 개입시키면 일시적인 효과는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중장기적인 발전 및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농업은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중앙정부’가 농정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유럽연합의 집행위원회와 같이 굵직한 정책을 챙기고 구체적인 정책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 특성에 맞도록 수립 및 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제와 해결의 중심과 주체는 농민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은 농민의 시장대응 역량을 키워주고 노령 및 영세농에게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 때가 되면 후보자가 아침 이른 시간과 저녁 늦은 시간에 전철역 출입구나 버스 정류장에 서서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지지를 호소한다. 올해 총선에서도 흔히 볼 수 있던 모습이었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당선사례’ 또는 ‘열심히 하겠습니다’ 따위의 무성의한 현수막을 용역업체 시켜서 네거리에 내다 걸고, 당선자의 신분은 만나기도 어려운 높은 사람으로 급속히 변경된다. 매번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민주 시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투표장으로 가는 것이 우리네들이다. 대통령은 국회의원보다 그런 현상이 훨씬 심할 것이다. 농민들과 농업계는 후보자와 공약을 잘 살필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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