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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극 한가지골농장 대표

“농민의 애국은 완전 농산물 생산으로 국민건강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기사승인 : 2014-01-02 09:46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40년간 오롯이 유기농업만을 고집하는 고집쟁이 농업인. 30여년간 10만명이 넘는 수강생에게 유기농업을 주제로 강의한 스타 강사. 농민이기 때문에 농민의 어려움을 알고 농민의 수고를 덜어줄 기계와 장치를 만든 농민 발명가. 우리의 앞선 농업기술을 북한에 전파한 영농기술자. 한가지골 이해극(64) 대표를 설명하는 다양한 수식어이다. “복이 많아 농민으로 태어나서 행복하다”는 이해극 대표는 지난 10월 24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있었던 대산농촌문화상 시상식에서 농업기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40년 유기농업, 쉬지 않는 농사꾼
충북 제천시 봉양읍 장평리. 이곳은 이해극 대표가 7남매 장남으로 13대째 400년간 살고 있는 곳이며, 또한 ‘이해극式 유기농업’이 실천되는 곳이다. 
10연동 하우스에는 지금 시금치가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하루야채]에 납품될 예정이라는 푸른 시금치 사이로는 잡초가 듬성듬성 있었다. 인터뷰 도중에도 잡초를 뽑고 있는 이해극 대표에게서 ‘유기농업은 잡초와의 전쟁’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장면이었다. 또한 설치된 자동개폐기에 대한 설명도 이어지고 있다. “물과 전기를 함께 만지는 농민들에게 감전사고로부터 해방시킨 개폐기이다”면서 자부심을 보였다. 
이어서 곧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이해극 대표는 트럭을 타고 10분여를 달려 25,000평의 유기농 브로콜리 농장에 도착했다. 수확이 끝나고 수로 재정비를 위해 바닥 공사 중이었다. 포크레인을 동원한 공사와 더불어 지하로 급수관을 설치하는 과정을 이해극 대표는 직접 뛰어다니면서 작업하고 있다. 제일 아랫부분에 관정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농사현장의 모든 과정은 이해극 대표가 직접 설계하고 작업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혀 힘들거나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농사욕심은 끝이 없다 - 육백마지기 농장, 24년에 걸쳐 유기농지로 일궈
   
 

강원도 평창과 정선이 맞닿는 해발 1,200m 고지에 위치한 육백마지기 농장.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비탈진 40ha의 농지를 이 대표는 1990년부터 24년간 가을에 녹비 작물인 호밀을 파종후 이듬해 갈아 엎는 방식으로 유기물 함량을 높이는 노력을 20년 이상 해왔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이 지역의 유기물 함량은 5.4%로 전국 평균(2.1%)보다 2배 이상 높게 나타났으며, 고랭지 배추 등 고품질 유기농산물 생산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건강한 임산부가 건강한 아기를 분만하듯이 모든 농산물의 모체인 흙을 제대로 관리해 주어야 한다. 모든 농사의 기본은 흙가꾸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이해극 대표의 지론이다. 
‘흙에 대한 정직한 투자는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이해극 대표의 유기농업은 농사를 하면서 땅을 더 좋아지고 생산성을 더 늘어난다고 강조한다. “유기농업을 하면 수확량이 줄어들다고 하는데, 토양분석을 통해 합리적인 관리를 통해 유기농업을 하게되면 수확량이 늘어났다”면서 흙을 보살펴 주는 유기농업을 강조한다. 
이해극 대표가 농사를 시작한 계기는 군복무 시절의 해외경험을 얘기하고 있다. 해군으로 복무하면서 순항훈련으로 싱가폴, 태국, 필리핀, 대만을 방문했는데, 1년생 작물이라고 생각했던 고추가 태국에서는 줄기가 웬만한 나무처럼 두꺼운 것이 한 주에서 한 가마니 이상 수확할 정도로 많이 달린 것을 보고 농사의 꿈을 키웠다. 제대후 연구 끝에 포트육묘를 이용한 고추 다수확 작형을 개발하고 전국 고추 증산왕에 선정(1985~88)되면서 그의 이름을 높였다. 당시 한해 수입은 서울 아파트 2~3채에 해당하는 소득이었고, 이 소득으로 6명의 동생들을 공부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농업기술로 북한에 도움줘 

   
 

그는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1999년 남북 공동영농협력사업에 유일한 영농기술자로 금강산 천불동 계곡앞에 고성국영남새온실에 대한 하우스 설계 및 시공, 영농기술 지도 총괄업무를 담당하는 등 북한 주민들 대상으로 채소와 벼농사에 대한 영농지도를 했다. 당시 북한주민들은 이해극 대표를 ‘미제 앞잡이’로 보면서 경원했으나, “이념과 사상을 초월한 농업협력을 통해 잘 살아보자”라는 그의 진심이 통하면서 신바람을 내면서 농사에 열심했다. 3년이 지나니까 자신보다 농사를 잘 하더라는 것이다. 

농민을 이롭게 하는 ‘농민발명가’ - 세계 최초로 감전사고 없는 자동개폐기 개발

   
▲ 이해극 대표가 개발한 자동개폐기. 이것으로 인해 비닐하우스 농사의 어려움을 덜어주면서 비닐하우스 재배면적은 비약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이해극 대표는 자신이 농사일을 하면서 불편한 점, 개선할 점을 농기계 발명이라는 실행에 옮기 시작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이 농사일에 힘들어 하는 농부가 꼭 필요한 기계를 만든다”는 이해극 대표의 말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1973년 온도변화경보기로 농촌진흥청 입상을 한 이후, 변온발아기, 일괄피복작업기, 자동파종기 등 다양하고 기발한 농작업 기계가 그의 손에 의해 탄생했다. 
1991년 그가 발명한 자동개폐기는 최고의 히트상품이다. 비닐하우스는 재배농민에게 고소득을 올릴 수 있지만, 온도와 습도에 맞춰 비닐하우스 창을 여닫는 것은 악성 노동이 필요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개발한 자동개폐기는 안개와 이슬비 소나기까지 감지해서 창을 닫을 수 있다. 고온경보 때는 작물이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기 위해 60초 후에 작동하도록 했다. 또한 물과 전기를 동시에 만지는 농부를 배려해 24V의 약전압 원동기로 개발해 만약에 발생할 수 있을 감전사를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기능은 개발자인 이해극 대표가 농부이니까 개발 가능한 기능이었다. 
1996년에는 당시 국내 자동개폐기 시장에 17개 회사가 난립한 가운데 이해극 대표는 농진청에 개폐기 단일 기종에 대한 시연회를 갖자고 건의했다. 이렇게 성사된 시연회는 5개 업체가 참석한 가운데 이해극 대표가 개발한 개폐기의 시연은 물속에서 이루어 졌다. 하우스가 물에 잠길 경우 개폐기가 고장나는 것을 감안해 시연한 것으로, 이때부터 이해극 대표의 개폐기 기술만큼은 국내에서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개발한 자동개폐기로 인해 비닐하우스 농사의 어려움을 덜어주면서 국내 비닐하우스 재배면적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또한 제품 기술은 1999년 동생 이해완氏가 경영하는 우성하이텍에 기술을 이전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우성하이텍의 자동개폐기는 국내 시장을 석권했을 뿐 아니라 해외 30개국에 한 해 100만대(700만 달러) 이상 수출되고 있다. 품질 경쟁력은 일본에 앞섰고, 가격 경쟁력은 중국에 앞섰기 때문이다. 이해완 사장의 우성하이텍은 견실한 회사운영과 기술개발로 년매출 140억원의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최초 개폐기 개발자인 이해극 대표의 지분은 단 1%도 없는 것은 특이하다. 
“농사꾼인 내가 지분을 갖고 있다면 농민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장사꾼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면서 지분을 보유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1990년대 17만원하던 개폐기가 지금은 6막5천원인 것은 그만큼 기술개발을 위해 노력한 결과”라면서 동생인 이해완 사장을 을 치켜세운다. 7남매 장남으로서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동생들과 상의한다는 이해극 대표, 가정의 화목이 지금까지 행복하게 농사에 전념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한다. 

   
▲ 이해극 대표는 대산농촌문화상 수상금 5,000만원을 통일협력사업에 전액 기부했다.
이번에 대산농촌문화상을 수상하면서 수상금 5,000만원을 통일협력사업에 전액 기부한 이해극 대표. 씨앗을 뿌리면 싹이 튼다는 믿음으로 40년을 오직 유기농 외길을 걸어온 이해극 대표의 아름다운 노력은 계속된다.

 

 

 

 

김신근 기자  pli004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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