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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업의 삼국유사(Ⅴ) - 身土不二, 內産內消, 地産地消

기사승인 : 2009-04-01 13:29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한국 농업의 삼국유사(Ⅴ) - 身土不二, 內産內消, 地産地消



지난 2월 중순, 상지대학교에서 김성훈 총장(前농림부 장관)의 주최로 “세계친환경 유기농 인정증제도 및 한국의 친환경 발전에 대한 심포지움”이 열렸는데 국내 친환경 전문가 및 유명교수들이 대거 참석하였습니다. 저도 초빙교수의 신분으로 강연을 들었는데 매우 유익했습니다. 그런데 몇명의 전문가와 교수들의 발표문에서 지산지소(地産地消)와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했는데 이것에 대한 정확한 어원(語源) 해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산지소는 일본말이고, 신토불이는 중국 말이고 전래되는 우리 말은 내산내소(內産內消)라고 엄연히 있는데도 알려지지 않아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3가지 용어에 대한 유래를 살펴보겠습니다.

● 신토불이(身土不二)

우리 나라에서 이 용어를 제일 먼저 등장시킨 사람은 1988년부터 1994년까지 제1기 민선 농협중앙회장으로 재직한 한호선(韓灝鮮)선생인데, 한 회장의 재직기간뿐만 아니라 DJ정권인 ‘국민의 정부’가 시작되기까지 10여 년 동안 농정의 만병통치약처럼 이 용어는 사용되어 왔습니다. 농민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까지 널리 알려졌고, 파생용어로 「도ㆍ농불이」, 「노ㆍ사불이」 등을 탄생시켰습니다.
우리 국민 누구나가 젊은 시절 한번쯤은 접해보았던, 성격책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삼국지(三國志)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가 있는데, 촉(蜀)나라 유비(劉備)를 중심으로 하는 나관중(羅貫中) 집필의 “삼국연의(三國演義)”와 서진국(西晉國)의 진수(陳壽, 221~263년)라는 사람이 집필한 위(魏)나라 황제 조조(曹操)를 중심으로 한 “진수 삼국지”가 있습니다.
진수 삼국지를 정사(正史)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 내용 중에 위나라 황제 조조의 주치의(主治醫)이자 작전 사령관 임무를 맡은 화타(華陀)는 출병을 앞두고 군졸들의 군장검사에서 허리에 매단 2개의 비단주머니 조사를 하는데 하나는 암염(岩鹽)주머니이고, 또 하나는 군졸들의 어머니가 밥하는 부엌바닥의 흙을 담은 주머니였습니다. 흙주머니를 준비하지 않은 군졸에게는 가장 이웃에 사는 군졸의 흙을 나누어 가지게 했다고 합니다. 만약 전쟁터에서 싸움으로 상처가 났을 때, 의약품의 공급이 여의치 않는다면 주머니 속의 흙을 상처에 바르면 상처가 아물지만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은 낫지 않고 상처가 곪게 되니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빌려줄 수 없는 물건이라고 강조하면서 ‘너희 집 어머니가 계신 부엌바닥의 흙이 너희 몸과 같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합니다. 이것이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800년 전의 일입니다.

● 내산내소(內産內消)

우리 역사에서 단군 환웅의 건국이후 가장 광활한 영토를 지배ㆍ소유했던 고구려는 3번의 천도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동명성왕의 천도이고, 두 번째는 유리왕의 천도이고, 세 번째는 고구려 19대 왕인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의 아들인 20대 장수왕(長壽王)의 천도인데,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천도는 압록강(鴨綠江)넘어 만주벌판內의 이동이었다가, 장수왕(제위 413~491년)때는 국내성(國內城)에서 압록강을 건너 평양(平壤)으로 오는 이동이었습니다. 이동을 할 때면 모두가 3~4일간 설사를 하는 등 배앓이를 하여 군사들의 사기진작에 문제가 야기되곤 했는데, 이때 유명한 여사제(女司祭)가 주문하기를 살던 곳의 우물을 주머니에 담아 3일동안만 마시면 탈이 없다고 하면서 내산내소(內産內消)라고 하였습니다.
이후 평양 사람이 압록강 넘어갈 때는 평양의 자기 우물물을 담아가고, 만주 국내성의 사람이 평양에 올 때엔 국내성 우물물을 담아 오는 등을 되풀이 할 때 어떤 병사가 압록강 물을 마셔보니 양쪽사람 모두가 탈이 없어 이후 압록강은 고구려 사람들의 영수(靈水)가 되었습니다. 압록강은 고구려 영토 안을 흐르는 강입니다. “안에서 나는 것은 안에서 먹는 것(內産內消)”은 물에서 음식으로 확산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지산지소(地産地消)

일본의 지산지소는 고구려의 내산내소와 내용이 매우 유사합니다. 서기 1603년부터 1867년까지의 265년 동안 에도(江戶)시대의 최고지도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시절의 일입니다.
혹카이도(北海道) 사람과 시코쿠(四國) 사람들이 지금의 도쿄(東京)인 당시의 에도에 출장 올 때 반드시 며칠씩 배탈이 나곤 하여 출장 떠날 때 자기집 우물물을 도자기 그릇에 담아 다닌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을 그들은 지산지소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신토불이, 내산내소, 지산지소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았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신토불이는 서기 200년경에, 내산내소는 서기 430년경에, 지산지소는 서기 1600년경에 만들어진 말들이나 모두가 같은 뜻의 한자용어이고, 이중 신토불이는 주로 한국에서, 지산지소는 일본에서 상용되고 있으나, 내산내소(內産內消)는 중국의 동북삼성과 북한에서 간혹 사용되고 있고, 한국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아 우리들의 정체성(正體性) 유지를 위해서도 사용됨이 좋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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