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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업기업의 중국 농업진출 사례 - 과거, 현재와 미래전망

기사승인 : 2010-06-01 15:08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기고]


한국 농업기업의 중국 농업진출 사례

- 과거, 현재와 미래전망 -
 

1. 서문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이었던 2008년 1월 15일, 러시아 특사로 지명된 이재오 특사(現 국민권익위원장)단 일원과 이를 지원하는 러시아 전문가 회의에 참석한 당선자께서는 이재오 특사에게 모스크바에서 귀국하는 길에 연해주를 둘러보도록 지시하시면서 이것에 대한 전문자료는 필자가 제공토록 부탁했다.
아울러 연해주는 향후 한국의 부족한 곡물 생산기지로써 또 남ᆞ북한 공동으로 곡물을 생산하는 장소가 될 것임을 강조하면서 몽골도 연해주와 같은 역할이 가능함을 지적했다. 이어서 중국은 멀지 않아 경제성장의 영향으로 육류소비가 늘어 곡물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락할 것이므로 중국에 곡물생산기지 구축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전문가와 같은 말씀도 있었다.
또 동남아시아 중에서 특히 캄보디아ᆞ미얀마 등 일년에 2~3모작의 농사가 가능한 곳에 진출하여 사료작물 재배도 해보라고 회의에 참석한 OO사료 회장에게 권하기도 하셨다.
이로부터 정확히 두달후인 3월 15일, 미국을 국빈 방문하는 태평양 상공의 기내에서 수행기자들에게 “앞으로는 돈 주고도 식량을 못사는 시기가 올 것이고, 이것의 대안으로 연해주와 동남아시아에 남ᆞ북한 공동의 식량기지 구축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이에 대한 젊은 기자들의 질문이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함을 답답하게 생각하고, 미국 도착 즉시 공관을 통하여 필자로 하여금 MB정부의 해외농업개발 정책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과 일본의 브라질 정착 성공사례 등을 대통령 귀국 전에 주요 언론사에 배부토록 부탁했다. 이에 따라 本稿의 주제인 「중국 농업 진출사례」를 논하기 전에 먼저 MB정부의 해외농업개발 아젠다가 무엇인가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 순서라고 판단된다.



2. MB정부와 해외농업개발(언론사에 배포한 내용임)


가. 왜 깊은 관심을?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려고 하는가?

인구 10억이 넘는 중국과 인도의 초고속 경제성장으로 육류소비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사료곡물인 옥수수ㆍ콩ㆍ밀ㆍ보리 등의 수요가 폭발했고, 화석원료의 에너지 가격인상(원유가격 : 1배럴당 80$이상)으로 이것의 대체 에너지 원료인 옥수수ㆍ유지작물(콩, 유채 등) 등이 「바이오에너지」로 전환됨에 따라 해당 곡물의 2중적 수요 폭발에 지금 이 시간 돈을 아무리 더 주어도 수급에 안정을 기할 수가 없어 아예 석유광구를 개발하는 개념으로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석유광구 개발하듯 식량광구개발」이라는 목표를 근간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나. 해외농업 개발종류에 대하여?

(1) 식량영토 구축

이것은 현금을 주고 다국적 곡물메이저로부터 식량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고, 아예 해외에서 직접 곡물을 농사지어 국내 반입하는 것이다. 이것의 가장 중요 점은 농지확보보다 곡물 터미널 매입 또는 건설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아르헨티나ㆍ브라질의 대서양 항구, 우크라이나ㆍ호주ㆍ캐나다 등 주요 곡물 수출국가들은 이미 다국적 곡물 메이저가 부두(Country Elevate System)를 독점하고 있어 한국 진출은 더 많은 비용이 지출되기 때문에 사실상 경제적인 효율성이 희박하다. 즉, 터미널 없는 곡물 수송은 바퀴 없는 자동차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다국적 메이저의 횡포가 미치지 못하는 곳은 동남아의 사회주의 국가 소유의 항구와 브라질의 태평양 수송로인 칠레의 아리카 항구, 러시아 연해주 등과 한국으로의 철로수송이 가능한 국가이다. 연해주의 “아그로상생”, “아로프리모리예” 등에서 제주도 2배의 농지확보를 한 것이 바로 식량 영토 구축의 모범사례이다.

(2) 원조차원의 해외농업 개발

동남아와 아프리카 및 중앙아시아 지역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 자금이나 종교단체 모금을 이용하여 NGO가 지원하는 해외농업개발사업은 국내식량문제와는 무관하다. 예컨데 중앙아시아나 연해주에 “고려인 돕기 사업”이나 인도와 아프리카에서 농업용수 및 식수개발 등의 대학생 봉사활동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나라도 과거 6.25때 참전16개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지금 이것을 위한 정부 지원예산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가나안 농군학교가 필리핀과 방글라데시에 새마을 학교를 세워 농업교육을 가르치는 것도, 중국 서부 빈민 농가들을 위한 새마을 운동 농가소득 교육전파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해외식량기지 구축의 아젠다는 이것과는 별개의 것이다.

(3) 해외농업개발 토목공사

동아건설이 리비아에 대수로 공사를 하여 사막을 초원화 하듯이, 농림부 투자기관인 「한국농어촌공사」가 지구촌 6대 주에서 대규모 농지개량 및 토목공사에 진출하여 외화를 획득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경우에 따라 한국 정부 예산으로 지원사업도 있으나 근본적으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건설사업의 범주이고, 한국의 식량영토 확보와는 직접적인 관계 보다는 이것을 지원하는 간접적인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평가 받고 있다.


다. 한국의 식량영토 구축 가능 지역은 어디에?

(1) 남ㆍ북반부 지역 균형확보가 이루어져야 한다.

브라질의 대두(콩) 출하 시기는 5월부터이고, 캐나다는 11월부터이며, 호주의 벼 수확은 4월부터이고, 연해주는 10월이다. 만약을 대비하여 식량영토구축은 남반부와 북반부 지역에 골고루 확보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브라질과 호주 등 남반부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지난 10년 전부터는 캐나다와 우크라이나이나 등 북반부 지역에 자국소속의 곡물 메이저들과 공동으로 농지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것을 참고해야 한다.

(2) 식량 생산 및 바이오에너지 생산 기지가 같은 지역이면 시너지효과가 배가(倍加)된다.

한국의 부족 식량은 옥수수ㆍ밀ㆍ콩 등이고, 에너지는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바이오에너지중 에탄올은 감자ㆍ옥수수ㆍ사탕수수ㆍ카사바 등에서, 디젤은 콩ㆍ팜야자ㆍ유채ㆍ자트로파ㆍ아주까리 등에서 추출한다. 바이오에너지 선진국인 브라질은 사탕수수에서 에탄올을 대두에서 바이오디젤을 추출하고, 미국은 옥수수를 주원료로 에탄올을, EU국가는 유채에서 바이오디젤을, 캐나다에서는 유채와 콩에서 바이오디젤을 주로 생산한다. 러시아에서는 아직 바이오에너지 생산은 하지 않으나 계획은 2007년 6월에 수립되어 흑해 연안과 알타이 평원에서 옥수수로 에탄올을, 시베리아에서는 감자로 에탄올 생산을 준비 중에 있고, 극동러시아 아무르와 연해주에서는 콩으로 바이오디젤 생산계획이 있었으나 양 지역의 생산 콩은 완전 non-GMO라서 국제시장에 식용 콩 판매가 더 높은 이윤이 보장되어 바이오디젤 생산계획은 잠정 중단되었다. 같은 지역에서 식량 곡실작물과 바이오에너지 작물이 동시 재배되면 작물의 호환성에 따른 윤작재배ㆍ부산물활용ㆍ운반시스템 등 다양한 시너지 효과가 보장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3) 곡물조달을 위한 한국의 진출지역은 이미 한정되어 있다.

다국적 곡물메이저의 횡포가 미치지 않고 WTO, FTA 등 국제규범에 제한 받지 않고 값싼 노동력을 얻을 수 있는 지역을 살펴본다.

(가) 러시아 연해주 지역
향후 남ㆍ북한의 철도관통으로 철도 수송이 가능하며 북한 지원을 위한 벼농사와 국내 수요의 콩ㆍ밀과 바이오에탄올 생산을 위한 감자재배 최적지이고 항구도 확보되었있다. 또한 한국 영농기업이 이미 진출해 있다.

(나) 몽골 동부 초이발산 지역
케롤렌 강을 좌우로 약350만ha(한국 총농지의 2배면적)에 벼농사 최북단 한계지역으로 옥수수와 콩 농사가 매우 잘되는 곳이며, 극동러시아 철도와 연결되며 중국의 만주리 국경 철도와도 연결되어 있다. 몽골 내각정부는 한국 영농기업의 진출을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이미 북한 노동자가 진출해 있다.

(다) 캄보디아와 미얀마의 동북지역
맨달레이 북쪽 밀림지역에 국제농업개발원에서 미얀마 정부로부터 약15만ha(4억5천만 평)의 임야를 35년간 무상임대 받아 티크 목재를 벌채하고 자트로파(바이오디젤원료)를 식재키로 합의를 보았고 사업진행 중에 있다. 맨달레이 강 남쪽에는 몬순기후에 적합한 작물들의 곡창지대이다. 러시아와 몽골이 북반부인 반면에 이곳은 남반부 지역이다.

(라) 브라질 동부 마투그로소 지역
브라질의 모든 항구는 대서양 쪽에 있다. 최근 중국ㆍ일본ㆍ한국ㆍ인도 등의 교역량이 커지면서 아르헨티나ㆍ볼리비아ㆍ파라과이ㆍ칠레를 통한 태평양 항구를 개발(칠레의 아리카 자유무역항)했고, 브라질 동북부 내륙지역인 “마투그로소”에 사탕수수와 콩(대두) 단지가 세계적 규모로 확대되고 있다. 필자는 브라질 룰라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서명된 마투그로소 지역 황무지 15만ha에 대한 투자요청서를 받아 한국농어촌공사에 전달했다.


라. 일본의 브라질 식량기지 구축과정과 현황

(1) 브라질의 농업이민은 작년 7월 8일로 만101년이 되었다

대한제국 광무7년인 1905년 한ㆍ일 양국은 동시에 멕시코 에니껭 농장에 농업이민을 보냈고, 일본인들은 멕시코를 거쳐 브라질에 230명이 3년 후인 1908년 7월 8일에 도착했다. 지금으로 보면 만101년 전의 일이다. 이후 그들은 끊임없이 농업분야에 진출했고, 1960년부터는 농장일꾼에서 농장주인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지난 1961년 브라질 농업부의 조사에 의하면 브라질 농업이민 53년만에 1,000배가 불어난 약24만 명의 일본인 이주민들이 농업분야에 진출 성공했다고 발표하였다.

(2) 1968년 브라질에 JAICA가 본격 진출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일본수상은 브라질이민 60년사 행사(상파울로)에 참석한 이후 일본국제협력단(JAICA)과 일본전농(JA)의 진출을 격려했고, 재단법인과 사단법인 등 비영리 단체로 무장한 해외농업개발 협회와 해외지향 NGO 11개 단체를 조직토록 지원하였다.(국가예산 비중 0.9%)

(3) 브라질의 농지공개념 제도도입 때 일본인들이 확보한 토지(농지와 임지)는 일본 자국 영토의 1.5배가 되는 약56만㎢ 라고 브라질 언론들은 보도했다

1980년 중반부터 1983년말까지 브라질 정부는 미국 재벌들이 소유한 농지를 빼앗기 위한 농지공개념 제도를 도입했다.(이것은 오늘날 한국의 영농조합법인 또는 영농회사법인이 농지를 소유하는 것과 같은 제도이고, 사업자등록증(흔히 영업감찰증)이 없는 영세농민은 영농회사의 주주로 가입토록하여 국가가 농지이용 계획을 입안하고 전량 수매하는 제도임) 이때 브라질의 시사주간지 “베자(Beja)”와 “브라질리아”, “상파울로 소식”등은 일본인 소유의 농지와 임지가 자국(일본) 영토인 37만7천8백㎢의 1.5배가 되는 약56만㎢가 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4) 브라질의 일본인 영농현장은 약5,300여 개이고 평균 면적은 1만ha이다

2007년 10월과 2008년 3월에 정부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브라질의 농업부문 최고 컨설팅회사인 카이젠 그룹의 ‘칼로스 이시키리야마’ 회장(브라질 이민3세, 리오 데 자네이로)은 “현재 브라질내에 일본인(브라질 시민권자, 영주권자, 일본기업 지사직원)이 경영주체로 있는 농장은 약5,300여 개(상파울로 일본상사 구락부 통계)이고, 농장당 평균면적은 약1만ha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2008년 3월 현재 브라질의 농업관련 일본인(시민권자 및 영주권자 합계)들은 약98만 명이고 일시거주를 포함하면 약120만 명이 되다고 했다.
또한 일본은 한국과 달리 해외 영농현장인 브라질, 호주 등에서 농사지은 곡물 또는 유제품이 일본에 상륙하는데 크레임(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적용치 않아서 한국의 해외농업 투자자들처럼 불편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3. 중국 농업 진출사례


가. 한ᆞ중 수교(1992년)이후 ~ 2005년까지 (841개 회사가 진출)

1992년 한ᆞ중 수교 이후 2005년까지 13년 동안 한국인의 중국 농업진출은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농산물, 그리고 중국 내수시장과 한국시장을 겨냥한 수출이 주목적이었고, 농업관련 다양한 분야에서 추진되었다.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면 (괄호안은 진출기업숫자)
● 식품 가공 : 김치류와 장류 및 라면 생산 (503개소)
● 축산 : 돼지ᆞ한우ᆞ젖소ᆞ오리 등의 사육 및 도축 (17개소)
● 화훼류 : 양란과 화목 및 조경용 묘목 (132개소)
● 과실류 : 신고배와 후지사과 등 생산 (23개소)
● 과채류 종자 생산 : 배추ᆞ무 등과 고추ᆞ수박ᆞ참외 등 종자 채종 (7개소)
● 과채류 생산 : 주로 한국시장을 겨냥한 고추생산 (87개소)
● 한약재 가공과 생산 : 장뇌산삼과 황기 및 산나물류 (19개소)
● 곡물생산 : 식용콩(두부용과 콩나물콩)과 메밀 생산 (8게소)
● 알로에와 파인애플 생산 (2개소)
● 농산물 유통 : 산지수집상(수출과 도ᆞ소매) (5개소)
● 중고 농기계 및 농자재 유통 (8개소)
● 시설원예 건설업 (9개소)
● 정미소 운영과 가공미(米) 사업 (3개소)
● 사료 생산 : 종합사료화 단미 사료 (11개소)
● 유기질 녹색비료 생산 (7개소) 등 총 841개 회사가 진출했다.
이들은 진출초기 값싼 노동력과 중국 정부의 면세혜택, 농지 및 공장 등의 토지 제공, 전기사용료 혜택 등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특별배려를 제공받았다. 필자는 진출조직 841개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그 이유는 필자가 1992년 8월 24일 한ᆞ중 국교수립 당시 수교문건에 따른 농업분야 부속문건 기록 감독관으로 참여했고, 1998년 9월 후진타오(胡錦濤)의 국가 부주석 취임과 2003년 주석취임 기간에 중국정부 농업경제 및 새마을 운동 자문관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이 기간 중국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했고, 중국산 농산물의 한국시장 범람은 한국농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으나 반면에 소비자들에게는 가정경제의 도움을 주기도 했다.


나. 2009년말 현재 128개 회사만 존립

1992년부터 2005년까지 13년 동안 한국의 중국 농업진출 기업 841개중 713개소가 철수 또는 도산했다.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간추려 보면,

●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와는 달리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특이한 체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막무가내식의 독선적 회사운영

● 나만의 고유 know-how(국제특허와 제조기법 등)가 없었고, 진출기업이 성공하니 이웃의 중국인(한족)들이 모방하여 금방 짝퉁을 만들어 시장을 교란하였고,

● 진출 당시의 호의적인 혜택이 줄어들고 오히려 과도한 세금징수와 뇌물요구, 중국말을 배우지 않고 조선족 통역만 이용하다 보니 농간과 배신행위로 인한 소송 등,

● 값싼 노동력(임금)이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인하여 1992년 대비 5배가 올라 노동효율성으로 따지면 한국의 노동자 임금과 비슷하게 되었다.

● 반면, 대기업(농심라면, 퓨리나사료, CJ, 종가집김치, 한전(漢田), 대상, 경복궁김치, 신세기, 삼원 등의 김치공장)은 단 한 곳도 철수하지 않고 성공한 것은 단단한 자본력과 충실한 시장조사 등 향후 변화 등에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했기 때문이다.

오늘 현재 격변하는 중국에서 그래도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성공한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 식품가공분야는 503개 진출 기업 중 50여개소만 운영 중인데, 대부분 대기업들이다. 이것은 중국 당국의 철저한 위생처리 환경법령을 준수하다 보니 과도한 자본금 투입으로 중소 영세기업들은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농심라면의 경우는 중국내 최고 기업으로 등장했고, 중국 전역을 커버하는 공장들을 건설하고 있으며, ‘스프’용 농산물을 직접 재배하기도 한다.

● 축산분야는 17개 진출기업 중 3개 농장만 운영되는데, 젖소농장 1개소와 한우와 돼지 농장 각 1개소뿐이다. 특히 젖소농장을 운영하는 필자의 고향후배인 주지석(50세)氏는 동북3성에서 가장 존경 받는 축산인으로 중국 및 한국에서도 유명할 뿐만 아니라 중국내 최첨단 집유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이곳에서 생산되는 우유는 중국내 최고급 유질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주지석氏 농장에는 한국 정부의 대대적인 시설지원이 있었다.

● 화훼분야는 132개 진출기업중 30여개 회사만 살아남았는데, 조경수와 화목류 사업체는 전멸했고, 양란재배화원들만 튼튼한 뿌리를 내렸다. 대표적 성공농장들이 모두 중국 최고의 화훼집산지인 곤명市에 있다. 이중 가장 성공한 농장은 「금호화훼」로 이 농장은 원래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운영했는데, 1998년 총사장인 김성호(65세)氏와 김희석 이사 등 3인이 공동인수하여 운영하고 있고, 인근의 「금난원」은 한국의 유명 동양란 농장인 금난원에서 투자하여 설립했다.
또한 「화중원예」는 한국의 경기도 고양시에서 접목꽃선인장 농장을 운영하는 한문규(작고)氏가 설립했다. 또 한ᆞ일합작 농장인 「경성화훼」는 전량 일본수출 농장이다.
이상 소개한 4개 화원 이외에 나머지 농장들도 잘 운영되고 있으며, 주품종은 심비디움과 덴파레 등이다. 이들 농원은 자체 조직배양 시설과 신품종 교배능력을 갖춘 한국의 최고 기술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자생력과 경제력의 원천이었음을 증명해주었다.

● 과실류 분야는 23개 영농법인이 진출했으나 현재는 17개 농장이 존립하고 있는데, 중국진출 농업조직 중에서 가장 높은 정착율을 보였다. 이것은 진출초기의 과감한 자본투입과 도시인근(특히 산동성 청도)에 뿌리를 내린 것이 적중했다.
예컨데 「산동성 한국 배 협회」는 1990년 중반 경상북도 이의근(작고) 지사의 후원으로 정착한 12개소의 신고배 농장들이 공동으로 조합을 설립했다. 이것은 한국사람끼리 과도한 경쟁을 막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으나, 지금은 상해 및 북경 시장 진출에 공동으로 대처하여 큰 효과를 보고 있으며, 공동으로 묘목을 생산하여 중국전역에 공급하기도 한다.
또한 북경 인군에 있는 「21세기 한국 배 농장」은 한국인 남궁견氏가 조성한 것을 지금은 박흥균(56세) 사장이 운영하는데 황금배ᆞ화산ᆞ갈천ᆞ만풍 등의 배가 5만주 식재되어 북경에 출하되고 있다.

● 과채류 종자 채종 및 생산분야는 이미 외국의 다국적 농산 및 곡물 메이저에 팔려버린 흥농ᆞ중앙ᆞ서울ᆞ청원 종묘 등은 논외로 하고, 한국의 토종 종자기업인 「농우바이오」가 투자한 「세농종묘」가 유일하며, 중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세농종묘의 고추종자인 ‘세농청초’는 중국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리에 재배되고 있으며, 중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세농종묘」의 년간 매출액은 한화 200억원을 상회한다.

● 과채류 생산분야는 87개 영농법인과 개인회사가 진출했으나 워낙 영세하여 사실상 전부 도산해버렸고, 최근에 진출한 업체(농장)들이 11개 존재하고 있는데, 이중 9개소는 고추재배, 2개 업소가 김장용 배추와 당근을 생산하고 있으며, 한족들과의 경쟁이 치열하여 장래가 불안하다. 대표적인 고추농장은 내몽고 통요市의 임순남(63세)氏이며, 약10만평의 면적에 「세농종묘」에서 공급하는 고추품종으로 재배하고 있다.

● 한약재 가공 및 생산분야에는 장뇌삼과 산나물, 고사리 가공 등으로 19개소가 진출했으나, 현재는 5개소뿐이다. 대표적 장뇌삼 농장은 백두산 가는 길목인 이도백화 인근의 「천지 장뇌산삼 농장」인데, 이곳의 사장은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하지만, 세계적인 산삼전문가인 한국인 한영채 박사의 지도를 받고 있다. 고사리 가공공장은 길림성 매화구의 김성환(49세)氏가 운영하는데, 90%가 한국에 수출하고 연간 물동량은 약500톤(건조고사리) 정도이다.
또 연변조선족자치주내 훈춘市에서 황기와 옻나무 재배 및 가공공장을 운영하는 경남산청 출신의 손철수(43세)는 약초재배로 성공한 사람으로 손꼽히는데 훈춘市 세무당국에 의하면 연간 매출액이 한화 8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 곡물생산분야에는 8개 기업이 진출했으나 지금은 CJ그룹과 풀무원에서 유기농콩나물 콩과 두부용 콩을 계약재배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진작 철수했다.

● 알로에ㆍ파인애플 생산분야에는 유니베라(남양알로에)가 해남도(海南島)에서 약600만평의 면적에 현재도 조성중에 있고, 파인애플은 한국원예기술사 협회장인 이문기氏가 해남도 삼아(三亞)에 휴양지를 겸하여 추진했으나 철수했다.

● 농산물 유통분야에는 5개 업소중 3개 업소는 철수했고, 산동성 평도市 인근의 「한국상사」를 운영하는 노현환(65세)氏가 마늘과 생강 등 채소류를 산지수집하여 가공하고 있는데, 특히 양파껍질 자동박피기를 개발하여 호응을 얻고 있고, 이화식품의 한재길(64세)氏는 중국전역을 상대로 농산물 수집상을 하는 한편 자색고구마를 대량 재배하여 일본과 한국에 수출하고 있다.

● 중고 농기계 및 농자재 유통분야에는 8개 업체가 활동했으나, 중국산 중ᆞ소형 농기계가 대량 생산되면서 한국의 중고 농기계 가격이 중국의 신품 농기계 가격과 동일하여 자연히 도태되었고, 농자재(원예용 시설자재)사업은 북경에서 「원예자재센터」를 운영하는 김성호 사장(곤명市 화훼농장 사장과 동일인물)이 유일한데, 최근 스프링쿨러제로 유명한 서원양행의 이종원 회장이 서부 사막지대인 감숙성 란주에 점적관수 자재공장과 함께 대규모 포도농장을 인수했다고 한다.

● 시설원예 건설업 분야에는 9개 회사가 컨소시움을 조직하여 진출했으나,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지성산업의 정회관 회장이 작고(2009년)하는 바람에 잠정 중단한 상태에 있으나, 최근 흑룡강성 성(省)정부가 이들 기업을 유치하려고 협상을 하고 있다.

● 정미소 사업과 가공미(찐쌀과 쌀분말) 분야에는 대구공단에 있는 대원산업과 쌍용정밀, 그리고 해림통상이 흑룡강성 해림과 영안ᆞ계서ᆞ밀산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대원산업과 해림통상은 현지 중국인들에게 회사를 팔아 철수했고, 쌍용정밀만이 가공미를 생산하고 있다.

● 사료생산분야에는 한국퓨리나와 CJ그룹의 중국 현지법인이 모든 가축사료들을 생산하고 있는데, 요즘은 엉뚱하게 애완용 사료의 인기가 매우 높다고 한다. 기왕 진출했던 영세기업 7개소는 생산을 중단하고 이들의 판매회사로 전행했다. 한편 최근 유산균 발효사료를 개발한 한국인 이석민(50세) 사장을 중국 정부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주목하고 있다.

● 유기질녹색비료분야에는 7개 단체(한국유기농협회와 친환경자연농법협회, 친환경오리농법협회 등)가 진출했으나,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지금은 “다물”이라는 간판으로 유기농법 영양제를 생산하는 최일현 사장과 팬더피트를 생산하는 「흑룡강성미농유한공사」의 안창웅 사장이 있다.
최근에는 “베훈친프로젝트”의 시약을 생산하는 쌍태식품이라는 회사가 있는데, 이것은 벼 생산에 특수기능성을 전이시켜 암과 당뇨를 치료하는 쌀을 생산하는 기술이다.

이상과 같이 현재 128개 회사가 운영되고 있지만 이 회사들 역시 R&D에 치중하지 않으면 한족들의 모방성 짝퉁에 낭패를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높은 소득을 올리는 한국인 회사들 옆에는 반드시 고의적으로 중국 당국의 지원을 받는 유사회사가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현존하는 한국인 경영의 농업진출 기업들은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존속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 역시 이제는 식량작물인 콩과 옥수수ᆞ쌀 등의 농산물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행되는 기로에 서 있기 때문에 한국 농업진출의 틈새시장 환경도 형성될 것으로 판단된다.


다. 흑룡강성 논(쌀) 농사에 진출 희망이 보인다.

지금까지 한국 농업의 중국 진출은 양면성이 존재했다. 국제 시장에서 라이벌 관계인 중국에게 한국의 농업기술을 전이시켰다는 부정적 견해와 반대로 한국시장에 값싼 농산물을 제공하여 국민들의 가정경제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인데, 분명한 것은 MB정부가 추진하는 해외식량기지 구축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朝(북한)ᆞ中 경제협력 신조약”에 따라 동북3성에서 재배된 곡물류가 무관세로 북한에 반입될 수 있는 법령정비로 붕괴되고 있는 조선족 마을 수전(水田)농업을 재생시켜 조선족 마을도 살리고 북한 식량지원도 하는 방안을 「한ᆞ중 경제전문가 협회」에서 적극 추진하려는 분위기가 있어 여기에 편승하여 한국의 「영농조합법인」 또는 「농업회사법인」의 진출이 모색된다.
다음의 내용은 최근 필자가 소속된 조직에서 정부에 제출한 문건이다.




『붕괴되는 중국 조선족 농촌마을을 위한 획기적인 소득증대 사업』


1. 사업목적

한•중수교(1992년 8월 24일) 18년만에 무려 230여만명(복수방문자 포함)의 중국거주 조선족 동포들이 돈벌이를 위한 방문취업으로 한국을 다녀갔습니다. 현재(2월 23일)에도 55만여명의 조선족 동포가 장기체류하고 있으며, 대부분 방문취업제로 입국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93%가 동북3성의 농촌집체마을 출신이고 91%가 쌀농사(水田)농업을 하던 순수 농민들과 그 가족들이었습니다. 그동안 이들은 조선족 집체마을 주민으로써 한민족 고유의 정체성과 전통성, 그리고 두레정신을 지켜왔고, 우리말과 글을 사용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귀국하게 되면 본래 거주지의 농촌 쌀농사(水田) 마을로 돌아가지 않고 인근의 도시에 진출하여 한국에서 번 돈으로 아파트를 구입한 후 식당․미장원․노래방․맛사지방과 가전제품․관광상품․식료품 등 소비산업과 도소매유통업 등으로 정착하여 안정된 보금자리를 꾸민 것은 그들 개인에게는 매우 보람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버려두고 간 쌀농사(水田) 마을의 농가주택은 허물어지고 있으며, 버려둔 논들은 한족(漢族)들이 차지했고, 일부는 방치되어 조선족 고유의 전통 쌀농사 마을이 붕괴되고 있습니다. 쌀농사 마을이 붕괴되는 것은 곧, 조선족 정체성이 무너지는 것이고, 우리 말과 글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저희 재단이 1차 조사한 바로는 50가구 이상의 조선족만 모여 사는 쌀농사 집체마을이 흑룡강성내 67개소, 요녕성내 18개소, 길림성(조선족 자치주 포함) 25개소 등 110개 마을이 있으나, 대부분 붕괴직전에 있습니다. 저희 재단은 本 사업을 통해 이농현상으로 붕괴직전의 조선족 마을을 재생시켜 韓民族(조선족) 정체성을 지키고 이에 따른 전통 풍습과 우리 말과 글의 보전을 목적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논농사를 지어도 도시진출자보다 월등히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절대적 방법과 추진력 향상을 위해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 운동을 전수코져합니다.
사업추진 총책임자인 이병화(국제농업개발원 연구소장, 농경영학 및 경제학 박사)가 발명한 세계적 발명특허인 암과 당뇨를 치료하는 기능성 쌀 생산 방법을 전수시켜 일반 쌀보다 3배 높은 가격을 받도록 할 것이고, 박정희 대통령때 청와대에서 새마을 운동(농가소득증대사업 부분) 담당관으로 9년간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이 사업을 추진하여 조선족 마을을 중국내 소수민족중 최고의 부자마을로 만들 것입니다.
이미 작년 1차 조사때 일부 지역에 기능성 쌀 재배를 위한 시약(배훈친 프로젝트)를 제공하고 기술을 전수시켜 재배한 쌀을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일반 시중 가격보다 3배나 높은 가격을 받아 이미 중국 언론으로부터 각광받은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금번 사업은 가장 침체한 3곳의 조선족 마을을 지정하여 이곳을 중점적으로 지도하여 부자마을을 만들고 나머지 조선족 마을들이 이를 본보기로 삼아 따라 하도록 할 것입니다.
지원예산중 저희 재단 부담이 월등히 많은 것은 조선족 전체 마을을 구제하는 항구적 사업이고, 이에 따른 기업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한국 정부(행정안전부)의 지원을 일부 받아 추진하겠다는 것은 이들의 조국인 대한민국 정부가 그동안 남북한 분단으로 인하여 조선족 동포들을 소홀히 취급한 죄송함과 동시에 절대로 잊지 않고 있다는 민족 사랑하는 마음과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함입니다.


2. 사업추진방법

● 과거의 방법은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행자부와 외교통상부 및 저희 재단 지원으로 흑룡강성 아성市 홍신(弘新) 조선족 새마을 집체부락(137가구)과 영안市 월성촌 월성새마을 부락(113가구)은 마을 앞까지 아스팔트와 인터넷 구축, 노인정, 유치원, 사우나탕, 학교버스 등을 지원하고 매년 한국 대학생 여름캠프를 개최하여 흑룡강성내 최고로 살기 좋은 조선족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농가소득은 거의가 한국 등 외국에 돈벌이 간 마을의 핵심주민 - 노인들의 자식들이자, 어린이들의 부모 - 인 이들이 매달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하다 보니 마을 주민들의 재산인 논과 임야(경작 관리권)는 청장년층의 부족으로 놀릴 수밖에 없었고, 이틈을 타서 한족들이 침입하여 차지했습니다. 돈벌이에서 귀국한 사람들은 잘 꾸며진 고향마을을 버리고 한족들 중심지인 시내로 부모님과 자식들을 데리고 떠나는 이농현상이 중첩되었습니다. 지금 이들 마을들은 완전 노인 수용소이자 부모 없는 어린이 탁아소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상기 2곳의 마을뿐만 아니고, 동북3성내 조선족 마을 110개가 비슷한 현상입니다. 이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한국의 농업관련기업인들과 조선족 지도자급 인사들은 작년(2009년) 한햇동안 동북3성을 수차례 방문하면서 수만명의 조선족 동포들을 만나 얻은 결론은 쌀농사 소득이 지금보다 2배만 보장된다면 우리말과 글을 사용하는 정든 고향으로 다시 오겠다는 사람들이 무려 78%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 쌀농사로 3배 소득 올리는 방법을 전수하겠습니다.
예컨대 흑룡강성 의란(依蘭)현 조선족마을은 75세대중 61세대는 가장(家長)이 한국으로 취업가서 없는 상태이며, 나머지 14세대도 한국의 방문취업허가가 나오면 떠날 사람들입니다.
자연히 이들이 경작하던 논들은 황폐화되기 시작했고, 이것을 걱정한 저희들은 고향 떠난 젊은 후계자를 설득하여 촌장(장수철 42세)으로 임명하여 기존의 초가집과 슬레이트 지붕의 농가들은 전부 허물고 마을주민 공동 아파트를 건설했고, 한족들에게 빼앗긴 논들도 거의 회수하여 75만평(250ha)을 다시 경작토록 대형 농기계를 지원하였습니다.
여기에 암과 당뇨를 치료하는 기능성 쌀인 「배훈친 프로젝트」를 농지의 일부(10ha)에 재배토록하여 기존의 쌀 가격보다 3배 높은 가격을 받았고, 또한 밥맛이 중국 최고라는 검사기관의 증명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목격한 모든 농촌 거주 조선족 사람들은 이것의 전수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습니다.

● 경제성 분석
현재(2월 23일) 중국의 1등미(米) 가격은 1kg당 한화 1,000원이고(한국은 2,300원임), 1ha당 생산량은 평균 5,000kg(5톤)입니다. 의란촌의 장수철 촌장의 경우 쌀 1,250톤을 생산하여 종전의 2등미(1kg당 800원)로 팔았는데, 소득은 한화 약10억원이었으나, 「배훈친 프로젝트」 처리재배후 판매가격은 1kg당 3,000원을 받아 전체면적에 심을 경우 무려 20억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목격한 중국농업은행은 아파트 건설때 차입한 미상환금액을 장기 무이자로 처리해 주었습니다.


3. 기대효과 및 활용방안

중국도 경제의 급성장으로 육류 소비신장과 식생활이 개선되어 2009년말 통계로 약4,300만 톤의 콩과 밀 등 잡곡 합계 1억 9천만 톤을 수입하는 등 곡물 생산국가에서 곡물 수입 국가로 전락되었습니다. 이것의 결과 동북3성의 수전(水田)농업(사실상 쌀 농사는 조선족이 총괄했음)이 각광받을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힘입어 조선족 마을을 재생시키고자 합니다.
시내에서 소비산업에 주력하는 조선족의 자녀들은 이미 우리 말을 상실했고, 이에 따라 민족 정체성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논과 마을공동임야는 향후 부동산으로도 값어치가 형성할 것입니다. 한편 최근 한국에서 과잉 생산ᆞ유통되고 있는 대형 쌀농사용 중고 농기계의 소비처로 등장할 수 있고, 남ᆞ북한의 빈부격차로 중국내 거주하는 북한국적의 “조교(조선교포)” 빈곤층을 흡수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으로 중국내 소수민족 중 쌀 농사에서도 조선족의 우수성을 발휘하여 한국과의 제1교역 상대국의 중국과의 우호선린관계를 가일층 상승시킬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울러 한국의 영농기업(영농조합법인과 회사영농법인)법들이 진출하여 주도적 역할을 하도록 노력할 것이고, 이것은 대통령께서 당부하신 북한식량지원기지 구축과도 연계됩니다.

(재)국제농업개발원 webmaster@iad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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