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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꾸지람

기사승인 : 2010-10-01 15:37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 저 꽃나무들 다 자라면 먹을 수 있어?

1972년 5월 첫째 주말, 故박정희 대통령(이하 어른)께서는 직접 설계하신 “새마을주택 1호”가 완공되어 필자가 입주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기흥IC 인근에 있는 관악골프장(지금은 리베라CC)에서 운동 후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담당 경호관을 통해 전달해오므로, 필자는 어른모실 준비를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사실 농장에는 이미 2월부터 비닐하우스에서 딸기, 메론과 서양 채소류들이 재배되어 청와대에 공급하고 있었고, 어른께서는 이런 것 말고 재래종 채소들을 심어보라는 당부 말씀이 있어 고들빼기, 재래종 조선호박, 질경이, 비름나물, 돗나물 등 어른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심어 놓았다. 또한 새마을 주택은 농장 한켠에 신축되어 응접실 앞에는 주변과 조화를 고려하여 20여 평쯤을 할애하여 1년생 초화류를 심어두었다.

두 달 전 기흥농장에 어른께서 설계하고 임시거처로 사용할 새마을주택을 짓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제일 먼저 찾아온 분은 얼마 전에 작고한 수도경비사령부(지금은 수방사)사령관인 윤필용 장군과 다음에는 박종규 경호실장, 이어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등이 찾아와서 나름대로 자문을 하면서 수경사령관은 건너편 산꼭대기에 ‘50구경 자동화무기’ 초소를 만들 것이니 소나무 몇 그루를 심으라 하고, 경호실장은 경호상 시야를 가린 소나무를 베어내라고 하고, 중정부장은 어른께서 하신 말씀은 모조리 기억하여 당신께 보고해라 하는 등 오시는 분마다 주문이 너무 많아 정신차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분들의 자문(?) 덕분에 심어놓은 꽃나무는 몇 차례 옮겨 심는 바람에 상당수는 말라 고사하기도 했다.

어른께서 방문하신 그날, 비닐하우스의 작물들을 둘러보시고 호미로 풀도 메어보신 후 신축한 새마을주택 오른쪽 큰 방의 응접소파에 앉으시면서 정원에 심어둔 저 꽃들이 다자라면 국거리 또는 반찬용으로 먹을 수 있느냐고 필자에게 질문하셨다. 필자의 답변은 “아닙니다”라고 했고, 어른께서는 “이 사람아 농장전체가 자연이고 정원인데 먹지도 못하는 꽃은 우리에게 사치다. 수출하는 것이라면 몰라도….”라고 꾸중 섞인 말씀을 하셨다.

이 소문을 들은 앞서 거론한 세분들은 분명 꽃을 많이 심으라고 자문 해놓고는 금방 말을 바꾸어 “내 그럴 줄 알았다. 그 녀석이 너무 설치더니”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 사건 이후 필자의 직속상관이신 박진환 경제(새마을)특보께서는 “대통령께서 밤낮으로 국민들의 먹을거리 걱정을 하고 계시는데 꽃같이 먹지 못하는 것은 안중에 없을는지도 모른다”라고 일러주었다.

 ● 3~4단 양수로 벼농사 지으면 벼이삭이 금싸라기 되느냐?

1973년 산불단속 차원에서 산림청을 경찰이 있는 내무부로 넘겨준 농림부는 농수산부로 새롭게 기구 개편하여 초대 장관과 차관이 김보현, 이득용씨가 되었다.

그해 봄가뭄도 예사가 아니고 지역과 편차가 심하여 음성ㆍ진천 등의 충북지역에서는 3~4단 양수를 위해 군대용 발전기와 양수모터들이 전부 징발되어 모심기 총력사업에 매진했다.

6월 중순 전국 모심기가 끝날 무렵 토요일을 모심기 현장 천막 속에서 자고 승용차 휘발유까지 몽땅 빼내주고 귀경길에 잠시 들렸다면서 형님되시는 이득용 차관이 휘발유 구걸을 하기에 들어와서 차나 한잔하고 가라고 권했다. 차관께서는 옷에 흙이 너무 묻어 평상에서 이야기하자면서 “야 임마 너희 영감(어른을 지칭)에게 3~4단 양수로 벼농사 지으면 벼이삭이 금싸라기가 되어도 손해인데 천수답 면적 좀 줄이라고 말씀 올려라”라고 한마디하고는 휑하니 가버렸다.

그 말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어 그 해 가을 벼농사 최고 다수확상 수상자 격려 후 농장을 들른 어른께 “각하 3~4단 양수작업으로 천수답 농사지어 금싸라기 만드는 것도 아니고 모심기를 지원하는 공무원들 불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해도 벼 다수확상은 비용을 불문한 절대성 평가는 공평하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을 올렸다.

어른께서는 필자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빤히 쳐다보시면서 “민심은 천심이고, 국민 총화는 곳간에서 나온다”라면서 수행한 여러 기관장들이 들으라고 크게 말씀하셨다. 당시 수행자 중 한 사람인 조병규 경기지사는 며칠 후 점심자리에서 “각하의 식량증산 정책은 너무나도 확고하고 녹색혁명 의지가 투철하여 비용과 관계없이 무조건 증산하는 것이 ‘국태민안’의 지름길임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얼마 후 농수산부 장차관 두 사람은 “한국생사사건”이라는 희대의 사기꾼 박○○의 장난에 휘말리어 사직당하고 말았다. 그 때 필자는 정치논리와 경제논리가 판이함을 처음 알았다.

 ● 소금가마니 사건

1976년 12월 10일 전국 새마을 지도자 대회 때 수원 새마을 연수원 김준 원장은 정신교육으로, 신갈농민학교(국제농업개발원 前身) 교장인 필자는 소득증대 교육으로 각각 공적을 인정받아 새마을 훈장을 수상했다. 그 날 축하 만찬장에서 발언기회가 있어 “겨울철 농한기 소득사업으로 각하께서 권장하신 가마니 짜기 사업이 수작업에서 기계작업으로 전환되어 일선 농촌에서 가마니가 너무 생산되어 농가소득에는 큰 도움이 되겠으나 수매에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니 어른께서는 깜짝 놀라시면서 “잠깐, 자네가 확실히 목격했는가?”라고 질문 하셨고, 필자는 “여러 곳을 분명히 보았고 농민들은 가마니 짜는 것은 기계에 맡기고 막걸리 마시고 있더라”는 실태를 본대로 설명 드렸다.

그날 어른께서는 밝지 못한 표정으로 농한기 소득사업은 돈벌이보다 열심히 일하도록 하여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노름하는 시간을 뺏는 것이 더 큰 돈벌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날 이후 기계로 짠 가마니는 소금가마니로 대체토록 하고 손으로 짠 것만 높은 가격으로 수매토록 하였다. 어른의 심정은 동내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가마니 짜면서 동네 살림살이 의견도 나누고 가마니 짜기 내기도 하는 동안 술ㆍ담배와 노름 등의 생각을 못하도록 하는 것, 즉 직접 소득보다 절약하는 간접소득에 그 의미를 두시는 것 같았다.

 

필자는 요즘 중국 동북3성의 조선족 수전(벼)농 마을 재생을 위한 새마을 지도사업을 하면서 겨울철 농한기(무려 6개월)에 짚공예(뫼신, 바구니 등 생활용품) 사업을 권장하여 이것을 미국거주 한국인 동포들에게 수출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조선족 동포들에게 겨울삼동 동안 독한 술을 마셔 건강망치고, 노름하여 자산 탕진하는 일들을 말리기 위한 이 사업이 바로 34년전 어른께서 말씀하신 엉뚱한 생각 못하도록 시간을 뺏는 간접소득증대 방안임을 조선족 지도자들에게 열심히 설파하고 다닌다.

“안 쓰는 것이 버는 것이라”라는 단순 논리가 새마을 정신의 ‘근면ㆍ자조ㆍ협동’의 밑바탕임을 새삼 느끼고 있다.
(2010. 8.31)

(재)국제농업개발원  webmaster@iad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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