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일송뉴스News

HOME > News

<한국의 역사마을 양동ㆍ하회마을(4)>

기사승인 : 2012-08-01 17:12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한국의 역사마을 양동ㆍ하회마을(4)>

 

이종호

(과학국가박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장기자문위원)

 

① 관가정(觀稼亭 : 보물 제442호)

관가정은 우재(愚齎) 손중돈(孫仲暾, 1463-1529)이 서백당에서 분가하여 살았던 집으로 서백당보다 늦은 148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풍수적으로 지맥이 흘러드는 위치인데 관가정이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었는데 안채의 동북쪽에는 입향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배치되었다. 일반적으로 대문은 행랑채와 연결되지만 이 집은 특이하게 대문이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건물은 사각기둥을 세운 간소한 모습이지만 마루는 앞면이 트여있는 누마루이다. 이곳에서 앞을 보면 마을의 전경이 다 보여 양동마을에서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곳 중에 하나이다.

대문의 우측에는 온돌방․부엌․작은방 등이 있고 그 앞에 ‘ㄷ’자로 꺾이는 안채가 있다. 안채 건물은 중앙에 중문을 두고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으로 배치되었는데 사랑채가 좌우로 더 길게 튀어나와 있다. 건물 기둥 밑에 약간의 홈을 좌우로 파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기둥이 빨리 썩지 말라고 한 것으로 비바람이 치면 빨리 건조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정자처럼 난간을 두른 것을 계자각 난간이라고 하는데 다듬은 모양의 닭의 벼슬 모양과 같아서 그렇게 부른다. 만약 앞이 막혀 있으면 평난간을 설치하며 사랑대청은 대들보 위와 천장 사이에 아무런 벽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 특색이다.

안채로 들어가면 부엌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방이 있고 부엌 위쪽에는 작은 대청 2칸과 방 2칸, 꺾여서 큰 대청이 있다. 종가 건물이므로 제례 의식을 많이 치루기 위한 용도로 대청마루가 크다. 안채의 기둥은 네모난 기둥을 사용했는데 사랑채의 경우 둥근 기둥을 사용한 것과 대조적이다. 조선시대에 둥근 기둥을 아무나 사용하지 못했다. 왕이 살던 궁궐, 공자를 모신 대성전, 사찰, 관공서 건물 등에는 둥근 기둥이 사용된 반면 일반 가옥은 네모난 기둥이 대부분이다. 관가정 안채의 기둥이 네모인 것은 사사로운 영역이기 때문에 철저한 유교 관념에 따른 것으로 인식한다.

행랑채(엄밀하게 보면 작은 사랑채)는 2칸부엌을 중심으로 3개의 방을 배치했지만 외관상으로는 4칸에 동일한 창호를 달아 구별되지 않는다. 이 집의 구조는 익공계지만 대들보를 직선재로 하지 않고 자연스런 곡선재를 사용해 대공없이 바로 종도리를 받는 특징적 구조다. 사당 건물은 단청이 칠해진 맞배지붕이다. 보통 사당에는 4개의 신위를 모시는데 서쪽부터 고조, 증조, 할아버지의 신위를 모시며 마지막에 부모의 신위를 모신다. 사당이 없는 집은 대청마루에 벽감을 설치하여 신위를 모셨다. 각 신위마다 탁자를 놓으며 향탁은 최존위 앞에 놓는다. 생활공간과 사당으로 구성된 관가정은 전체적으로 격식을 갖춘 주택이므로 보물로 지정된 것이다.

 

② 무첨당(無忝堂 : 보물 제411호)

회재 이언적의 부친인 이번(李番)이 살던 집으로 1460년경에 지은 여강(驪江) 이씨(李氏)의 종가집이다. 안채, 별당채, 사당채 중에서 별당건물이 무첨당이다. 사랑채의 연장 건물로 손님 접대나 쉼터, 독서 등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는 용도인데 무첨당은 이언적의 맏손자 이의윤의 호로 조상에게 즉 나를 낳아주신 부모에게 욕됨이 없게 하라는 뜻이다.

건물의 평면은 ‘ㄱ’자 형인데 서쪽의 꺾임부에 방을 배치하고 동쪽으로 대청 3칸과 방 2칸을 연결하여 정면 6칸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꺾임부에서 남쪽으로 누마루 2칸이 연결되어 있다. 건물의 정면과 주요 공간에는 둥근 기둥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함께 사용했다. 우측 끝 반칸에 마룻방을 달아 고방으로 이용하며 이 부분의 지붕은 부섭지붕으로 전체적으로 합각지붕과 같아 보인다. 구조는 초익공계로 가장 원형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대청 대들보 위에 포대공(包臺工)이 있어 종도리를 받고 있음도 주목할 만 하다. 별당은 원래 외부의 눈에 잘 띠지 않고 접근이 어려운 곳에 두는데 이 건물은 살림채 입구에 있고 기둥 상부의 공포는 물론 난간도 계자난간을 돋보이게 장식하여 화려하게 꾸미는 등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어 보물 제411호로 지정되었다.

전체적으로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해서 튼 ‘ㅁ’자이며 안채는 중문을 통하거나 부엌 쪽으로 난 문을 통해 외부 공간으로 출입할 수 있다. 건물의 중심에 무첨당, 우측 방 입구 위에는 흥선대원군의 글씨인 ‘좌해금서(左海琴書)'라는 죽필 글씨의 편액이 있다. 안채 지붕에 바위솔, 일명 와송(瓦松)이 자라고 있는데 오래된 지붕 기와 위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 바위솔은 해열, 지혈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③ 향단(香壇 : 보물 제412호)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화려한 지붕구조를 가진 아름다운 건물로 이언적이 1543년경에 경상감사로 부임할 때 중종 임금이 그의 모친의 병환을 돌볼 수 있도록 배려하여 지어 준 집이다. 이언적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 중 자신을 대신하여 어머니를 모시던 동생 이언괄에게 지어준 살림집이라는 설도 있다.

향단은 매우 큰 건물로 원래 99칸의 건물인데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현재 51칸 또는 56칸으로 줄여져 약 70평의 건평을 갖고 있다. 전체적인 건물의 배치는 일반 상류주책과는 다른 ‘월(月)’자형이고 ‘일(一)’자형의 행랑채와 칸막이를 두어 ‘용(用)’자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해와 달이 함께 있는 부귀공명사상에 기인한 풍수지리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향단 건물의 내부는 한마디로 폐쇄적인 미로와 같은 구조다. 밖에서 보면 화려한 공간으로 생각하지만 마당이 5미터x5미터에 지나지 않아 답답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행랑채 협문을 통해서만 사랑채로 연결되는데 특히 안대청이 중정 쪽으로 향하지 않고 행랑채 지붕을 보도록 계획한 것은 유례없는 구성으로 안마당과의 기능적 관계보다는 전망을 중시한 의도로 보인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형태로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로는 온돌방을 배치했다. 안채는 2개의 안방이 안대청 모서리를 두고 꺾여 접합되어 있다. 특히 행랑채마저 둥근 기둥을 사용한 것은 일반 사대부 집으로는 유례가 드문 예로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한 번쯤 들러보아야 할 곳으로 추천된다. 2008년 방송된 드라마 「가문의 영광」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서백당(書百堂 : 중요민속자료 제23호)

안골 중심의 산중턱에 자리 잡은 규모와 격식을 갖춘 대가옥으로 이 마을의 입향조라 불리는 양민공(襄敏公) 손소(孫昭)가 세조 3년(1457년)에 지은 월성(月星) 손씨(孫氏)의 종가집으로 이언적이 출생한 곳이기도 하다. 일부 자료에는 성종 15년(1484)에 지은 집이라고도 한다.

서백당은 강릉 오죽헌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전통 건축의 대표라 할 수 있으며 양동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으로 과거에는 이 집 주위에 외거하인들이 거처하던 가림집이 있었다고 한다. 서백당(書百堂)은 하루에 참을 인(認)자를 백번 쓴다는 뜻이며 근래에 와서 굳어진 당호(堂號)이다. ‘일(一)’자 형 대문 뒤로 ‘ㅁ'자 형의 안채를 두고 뒤편에 사당을 배치했다. 지붕은 박공면을 적절히 조합하여 정면은 합각지붕과 같이 보인다. 구조형식은 납도리집으로 기둥도 사각기둥만 사용했다. 이 건물 뒤로 아름다운 후원이 있는데 경상북도 기념물 제8호인 향나무가 있다. 1992년 영국의 찰스 황태자가 양동마을을 방문하면서 이곳을 다녀갔는데 양동마을에서는 관가정, 향단과 함께 반드시 들려야 하는 필수 코스에 포함된다.

김환대 경주문화유산답사회장은 서백당에 대한 재미있는 예언을 적었다. 손소가 이 집터를 잡을 때 지관이 설창산의 혈맥이 응집된 이곳에서 세 명의 현인이 태어난다고 예언했다고 한다. 손소의 둘째 아들 우재 손중돈과 외손인 회재 이언적이 이곳에서 태어나 현재 두 명의 현인이 태어났는데 남은 한 사람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 명의 선현이 더 태어날 것을 기다리며 시집간 딸들이 임신하여 이곳에 오더라도 머물지 못하게 하거나 다른 집으로 보낸다고 한다. 이는 다른 집안에 선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언제 세 번째 선현이 나타날 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⑤ 상춘헌(賞春軒 : 중요민속자료 제75호)

근암고택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주택은 상춘고택(賞春古宅)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조선 영조 6년(1730년)경에 동고(東皐) 이덕록(李德祿)이 건립하였고, 그의 증손으로 예조참의(禮曺參義)와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한 이정덕(李鼎德)이 동편 사당을 증축했다. 크게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양동마을에서 보기 드문 중부지방 배치 형태를 보이고 있다.

 

⑥ 근암고택(謹庵古宅 : 중요민속자료 제76호)

근암고택은 정조 4년(1780)경에 이정수(李鼎壽)가 지은 집으로 근암은 그의 증손자인 근암 이희구(李熙久)의 호에서 따왔다. 근암이 홍릉참봉을 지냈기 때문에 참봉댁이라고도 한다. 이 집은 일반적인 ‘ㅁ’자 평면을 따르지 않고 안채와 사랑채를 완전히 분리시켜 주거 공간의 기능에 따라 배치를 다르게 했다. 특징적으로 근대화의 영향으로 거의 사라진 초가 형태의 작은 규모의 화장실이 있다.

 

⑦ 두곡고택(杜谷古宅 : 중요민속자료 제77호)

두곡고책은 이언적은 6대손인 이식종이 분가할 때 지은 것으로 영조 9년(1733)경에 건립되었고 그 후에 이언괄의 14세손인 이조원의 호를 따 지었다. 안재, 사랑채, 아래채가 ‘튼ㅁ’자 기본 평면을 갖추고 있고 앞뒤로 딸린 건물들을 나누어 배치했다. 부엌 뒤 초가에 있는 디딜방앗간은 마을에 몇 개 안 남은 것 중 하나며 안채 바로 뒤의 작은 별채는 딸을 위한 공간이다.

 

⑧ 이향정(二香亭 : 중요민속자료 제79호)

조선 숙종 21년(1695)경에 건축된 ‘ㅁ’ 자형 주택으로 온양군수 이범중(李範中)의 맏아들로 담양부사를 지낸 이헌유(李憲儒)가 살던 집이며, 이향정(二香亭)은 이범중의 호이다. 사랑방, 안방, 행랑방, 책방 등의 구분되어 연결된 매우 큰 건물이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본채인 안채와 사랑채를 대각으로 배치한 것은 중부지방 집이 지니는 특징이다. 사랑채는 좌로부터 문방 1칸, 사랑방 2칸이 접해 있으며 정면이 6칸이고 측면이 1칸 반 크기이다. 가운데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두었다. 정면에 초서체로 만취재(晩翠齋)라고 쓴 편액이 있는데 양동마을의 많은 건물 중 유일하게 쓰인 초서체 편액이다.

 

⑨ 심수정(心水亭 : 중요민속자료 제81호)

심수정은 명종 15년(1560)에 형을 위해 벼슬을 마다하고 노모 봉양에 정성을 다한 이언적의 동생 이언괄을 추모하여 지어진 정자이다. 양동마을에는 10개의 정자 건물이 있는데 정자가 이곳처럼 밀집되어 있는 곳은 드믈다. 손씨의 정자는 세 곳으로 관가정, 수운정, 안락정이 있으며 이씨의 정자는 일곱 곳으로 영귀정, 심수정, 설천정사, 양졸정, 동호정, 육위정, 내곡정이 있다.

강학당 밑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에서 양동마을 입구를 내려다볼 수 있다. 낮은 담으로 둘러져 있고 2동으로 구성되어 ‘ㄱ'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기단은 특이하게 긴 판석재를 이루고 있어 다듬은 수법으로 보아 주변의 사찰터에서 옮겨다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방 앞에 툇마루를 두었고 우측 대청 옆에 2칸의 온돌방이 있으며 이 정자를 지키는 관리사용 행랑채도 있다.

심수정은 양동마을 정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기둥은 모두 둥근 기둥을 사용했지만 누마루 부분은 특이하게 하단1부분을 팔각기둥으로 깎았다. 건물 정면과 옆 부분 일부에 다듬은 초석을 놓았지만 나머지는 자연석을 사용했다. 당대 양반들의 권세를 엿볼 수 있는 가옥으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을 비롯하여 「내마음의 풍금」, 「혈의 누」, 「스캔들」, 「음란서생」 등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⑩ 서당(안락정, 강학당)

양동마을엔 서당이 3개나 되는데 이씨 문중의 강학당(講學堂 : 중요민속자료 제83호)과 경산서당(景山書堂) 그리고 손씨 문중의 안락정(安樂亭 : 중요민속자료 제82호)이 그곳이다. 손씨 문중의 안락정은 양동마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로 강학당과 쌍벽을 이루는데 양동초등학교 맞은편 언덕 위 산기슭에 있다.

건물은 정면 5칸에 측면 2칸으로 앞똑에 툇마루를 둔 ‘ㅡ’자형의 평면집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며 앞쪽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이며 양쪽 끝 칸은 방을 두었다. 앞면과 대청 뒷면은 둥근 기둥을 세웠고 온돌방은 네모난 기둥을 세워 달리하고 있다. 이것은 앞이 열려 있는 대청은 여름철, 온돌방은 겨울에 대비하는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안락정의 기둥은 주두에 새겨진 조각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대들보는 곡선을 이루고 중간에 등자쇠가 보인다. 등자는 말을 타고 앉아 두 발로 디디게 된 물건인데 한옥에서는 문을 걸어두거나 접어서 들어 올리는 역할을 한다. 여름철을 시원하게 나기 위해 문을 접어 올리고 공기가 잘 통하게 하는 자연 선풍기 역할을 도모한다.

경산서당은 회재 선생의 맏손자 무첨당(無忝堂) 이의윤(李宜潤)을 봉향하면서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다. 1835년경에 이웃 안계리에 건립되어 있던 것을 댐 건설로 1970년 이곳으로 옮겼다.

강학당은 경주시청 자료에 의하면 정조 4년(1780)에 세운 이씨(李氏) 문중(門中)의 서당이다. ‘ㄱ'자형 평면 구조로 일반적인 ’ㅡ‘자형 서당 건축 배치와는 다른 형식인데 이것은 안방 아래로 마루와 책방을 덧붙이면서 변화한 것으로 짐작한다. 꺾이는 부분의 안방을 중심으로 우측에 2칸 대청과 건넌방이 있다. 홑처마와 맞배지붕으로 꾸며졌고 옆면에 만들어지는 삼각형 벽면 합각에는 비바람막이 역할을 하는 풍판(風板)이 부착되어 있다. 매우 안정감이 있고 소박한데 공부하는 일을 뒷바라지 하던 행랑채 고직사가 옆에 위치한다. 이들 초가와 함께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그림 같이 자리 잡고 있다.

(재)국제농업개발원 webmaster@iadi.or.kr

<저작권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국제농업개발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