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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에 동원된 인원수, 과연 의미가 있는가?

기사승인 : 2017-03-03 18:30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본 기사는 뉴욕타임즈에 게재된 기사로 우리의 촛불과 태극기 집회를 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데모의 규모는 정말 중요한가?
미국을 포함 세계 각국에서 열린 지난 달의 350만명 규모의 "여성권리 시위"(the Women 's March)는 아마도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였을 것이다.
수많은 인원이 참가했다는 건 당연히 의미 있는 일인데, 지난 20년간의 데모를 조사해 온 나는 여기서 여러분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려고 한다.  

디지털 시대에서의 ‘데모의 규모“란 더 이상 시위가 갖은 ’영향력의 강도‘로 신뢰할 수 있는 지표가 아니란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시위의 참가자의 숫자와 비교하게 되면 특히 오해를 일으키기 쉬운 것이다. 이젠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라는 것만으로는 그 ’시위의 파워‘를 나타내지 않는다. 단지 데모(시위)는 그 시위운동의 잠재력을 상징하는 것일 뿐이다.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일로 비유해보면, 톰슨 가젤이 풀을 뜯다 말고 갑자기 이유 없이 높이 점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포식자에 대해서, ”나는 이 정도로 높이 뛸  능력이 있고 빨리 달릴 수 있으니 쫓아와도 소용없어!“라고 알리는 메시지이다.
이처럼 데모 참가자도 "우리는 이 정도까지 모일 수 있으니 우리가 전력투구하면 어떻게 될지 알겠지?”라고 상대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과거에 대규모 데모를 위해서는 적어도 몇 개월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었는데, 예를 들어 1963년의 "워싱턴 대행진"은 그 준비가 9개월 전인 1962년 12월부터 시작했다. 그 결과 25만 명이 모였는데, 오늘날 같은 규모의 시위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헌신, 그리고 준비가 필요했다는 의미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이메일, 휴대전화, 그리고 크라우드 펀딩 등 없이 그런 시위를 조직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공민권 쟁취운동과 같은 강도와 정밀함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지금 대규모 데모를 개최하는 것이 이전보다 훨씬 쉬워지고 있는데, 최근의 대규모 시위가 정책적이고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고 실망으로 끝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필자는 2003년 2월에 개최된 반전시위에 참가한 적이 있다. 이 데모는 당시에 세계에서 열린 사상최대 규모의 시위라고 불리며, 세계 600개 이상의 도시에서 열렸다.
필자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이 정도 규모의 데모라면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시위를 "단순한 포커스 그룹에 의해 행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평가절하하였고, 수많은 데모 참여자를 비웃으면서 데모 직후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었다.
**(focus group, 포커스 그룹) : 특정 목적을 가진 사람들 무리로 시장조사나 여론조사의 대상이 되는 전형적인 사람들

부시 대통령은 실제 한 가지 측면에서 옳았다. 데모 참가자들은 부시 대통령을 2004년 선거로 패배시킬 때까지 ’정치적인 파워‘로까지 전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2011년의 "세계 점거"시위에도 참여했다. 이것은 80개국 이상 1,000개의 도시에서 개최되어, 당시에는 이 시위 역시 사상 최대규모로 기술의 발전 덕택으로 단 몇 주 만에 조직된 것이다. 이때도 나는 경제 격차에 대한 이 정도의 대규모 저항운동이라면 즉각적 변화가 정치와 경제 쪽에서 일어날 것이라 낙관했지만 결과는 아니었고, 이전 시위에서처럼 유감스런 결과로 끝이 나버렸다.

그 후 전 세계적으로 유사한 시위가 끊임없이 개최되고 있지만, 모두 실질적인 성과로는 연결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데모의 중요성이 없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데모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데모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데모는 조직적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그 시민운동의 최초적이고 잠재적 첫 걸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날의 ’대규모 데모“는 1963년의 "워싱턴 대행진"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 로자 파크스가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것을 거부하는 행동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이전의 시위(데모)가 ‘최종적 시점’이였다면 현재의 데모는 ‘최초의 불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보다는 ‘이후에 일어날 일’에 좌우되도록 변화된 데모의 현 모습이다.

2009년의 티 파티 운동을 기억해보라. 이때도 미국의 많은 도시에 몇 십 만명의 사람들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도움으로 동원되었다. 그리고 지난달의 "여성의 권리 시위"와 마찬가지로 여러 대규모 데모집회는 특정한 지지를 상징하는 형태의 표현으로 자신과 같은 생각을 지닌 동료들을 알게 되는 이벤트 정도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운동에 대한 지지를 상징적인 형태로 표현한 것이며,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동료를 알게 될 수 있는 ‘이벤트’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티 파티 데모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여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찾고 경선에 내보내고 그 반대파인 공화당의원에게 도전하면서 정책의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티 파티’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정치인에게 압력을 가하는 일 등이 그 것이었다.
 
필자 자신도 참여했던 지난 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개최된 "여성의 권리 시위"에서 참여자의 수많은 숫자와 행진하는 데모대의 열정에 놀랐지만 이런 데모 참가자들이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거나 만나서 전략회의를 하거나 하는 등, 티 파티 지지자들이 했던 것처럼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물론, 운동을 추진하면서 또한 참고할 만한 것은 티 파티만이 아니다. 그런데 거리를 행진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결과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참가한 노스캐롤라이나 데모는 "자 일을 시작하자"(Let 's Get to Work)라는 노래를 부르며 종료되었다. 오늘 날의 시위대에게 이 노래 제목만큼 합당한 메세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항의 데모와 같은 형태의 이벤트는 SNS의 발전으로 이전보다 쉽게(?) 조직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이 실제 정치 운동으로 이어질 지의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와일리가 말대로 "랜드 파워가 결정권을 가진다"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결론적으로 충실한 정치적 노력과 정책실현을 위한 조직운영이 시위들이 목표로 하는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모든 정치조직의 운영에는 역시 "이권"과 같은 구조가 필요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현대사회에서 민중은 이권(利權)없이 움직이기 어렵다. 이권이라는 것에는 돈, 권력뿐 아니라 선(善), 정의, 사명감 등도 포함된다. 선(善), 정의, 사명감으로 뭉쳤던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은 어느 새 우리 사회에서 선(善)과 정의와 사명감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출처 : 뉴욕타임즈 지나프 투웨구치 / 번역 : 오마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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