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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들이 부르는 아리랑은 차라리 눈물이었다.

기사승인 : 2017-06-02 18:52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고려인들이 부르는 아리랑은 차라리 눈물이었다.
  • (재)국제농업개발원
  • 승인 2017.06.02 11:35
  • 호수 353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즈음하여 5월 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억과 동행 위원회 발족식'이 있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4만 5천명의 고려인들은 다문화가정을 이룬 외국인들보다 못한 처우를 받고 있다. 미국거주 재외국민들이나 심지어 중국의 동포들과 비교해도 고려인에 대한 한국정부의 처우는 불공평하다.

고려인들이 부르는 아리랑은 차라리 눈물이다.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국민의 설움과 그 들의 남겨진 후손들은 지금 한국의 언저리 어디에선가에서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살수 없냐며 한탄하고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한국은 고려인들의 한과 눈물을 닦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할아버지 나라에서 살면 안되나요?"

(※ 다음은 관련 기사내용입니다.)
5월 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억과 동행 위원회 발족식'과 고려인들의 애환을 그린 영화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 국회 시사회를 주최했습니다. 고려인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이주한 농민, 일본의 압제를 피해 소련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입니다.

80년 전인 1937년 9월 9일, 20만여 명의 고려인들은 화물열차에 몸을 싣고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로 강제이주 됩니다. 스탈린의 분리, 차별정책에 의해 자행된 숙청되고 강제이주 과정에서 희생된 고려인은 1만 명 이상입니다. 한 달에서 세 달 동안 화물 열차에 갇혀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며 노인과 어린이를 비롯해 수많은 고려인들이 쓰러져갔고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중앙아시아 초원에 버려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강인했습니다. 숟가락으로 토굴을 파서 거주지를 만들고 거친 들판을 일궈 농업을 일으켰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한민족의 기상을 보여줬습니다. 그렇게 굳세게 80년의 세월을 견뎌냈습니다.지금 우리나라에도 약 4만여 명의 고려인들이 '할아버지의 나라'를 찾아와 있습니다. 고려인 동포는 경제적 기반이 약해 안정적 체류가 힘들고,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 적응이 어렵습니다. 또한 고려인 동포 4세의 경우 재외동포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만 19세 성인이 되면 우리나라에서 추방되어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합니다.김경협 의원을 중심으로 여러 단체들은 고려인특별법 전부개정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고려인 동포의 체류 자격 취득 요건을 완화하고 고려인동포통합지원센터 설치를 통해 우리말 교육과 함께 정착 및 생활안정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입니다. 우리 사회가 고려인 동포를 포용하는 것은 한민족 공동체 의식을 제고하고 인구 절벽 시대에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 확대 등 다양한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 주인공인 고려인 3세, 방 타마라 씨

이날 함께 열린 국회 시사회의 다큐 영화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는 고려인의 삶의 질곡을 함께한 고려극장의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실제 주인공인 고려인 3세, 방 타마라 씨가 '백만 송이 장미'를 열창해주셨습니다.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는 5월 25일 개봉합니다.

(재)국제농업개발원 webmaster@iad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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