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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길에서 옛 이야기를 듣다

기사승인 : 2018-12-11 20:15 기자 : 일송재단 국제개발원

서울 가양동

모처럼 날씨가 포근하다. 밀린 일 때문에 며칠 책상 앞에 붙어 있었다. 주말이라도 걸어야 한다는 강박이 앞선다. 전해 줄 책을 핑계로 친구를 만나 산책에 나섰다. 봉제산과 한강 중 고민을 하다가 한강쪽을 선택했다. 더 추워지면 한강쪽으로 나가기 힘들 것 같아서였다. 양천향교역에서 내려 허준로를 따라 허준박물관으로, 거기서 한강까지 걷는 코스를 잡았다. 


양천향교역 3번 출구에서 허준로까지 안가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은행나무와 우물터를 발견했다. 

 

▲ 성주우물 은행나무 [문재원 기자]


성주우물 은행나무! 이런 곳에 웬 우물터?


잎이 다 떨어진 은행나무 빈 가지 끝에 새집이 하나 얹혀 있다. 굵은 가지 중간이 부러진 걸로 봐서 나무의 상태가 좋은 것은 아닌 듯 했다. 표지판의 설명에 따르면 나무의 나이는 450년쯤 되었다. 마을이 개발될 때 다른 나무들과 함께 베어질 뻔했는데 마을 주민들의 관심으로 보존되었다. 나무가 발견될 당시 밑둥에 큰 동공이 있었고 죽어가는 상태였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이 주축이 된 ‘성주우물 은행나무 보존회’에게 외과적 시술 등의 노력을 해서 지금까지 잘 버니고 있다고 한다. 나무의 크기에 비해 바닥에 깔린 은행잎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온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은행나무 아래 우물터는 ‘성주우물’이다. ‘성주우물’이라고 불린 것은 당시 마을의 수령을 ‘성주’라고 부른데서 연유되었다. 이 우물은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고 물맛이 특별히 좋다고 소문이 나서 양천고을 성주만 마셨단다. 가뭄에도 마른 적 없다는 우물에는 이제 물은 없고 낙엽만 가득했다. 

 

▲ 허준로 풍경 [문재원 기자]

허준로로 접어들자 한적하다. 아파트를 지나자 중학교, 중학교 바로 옆은 고등학교, 길 건너에 복지관, 그 옆은 체육관 그리고 성당. 노선 버스가 몇 개 있지만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은 아니었다. 


작은 언덕 앞에 탑산약초원과 구암약초원 이정표가 보인다. 화살표를 따라 탑산약초원 방향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일반적으로 많이 발병하는 질병을 11가지로 분류한 후 그에 맞는 약초식물을 심어놓았다는 안내문이 보인다. 어떤 약초식물들이 심겨졌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허준박물관과 연계되어 조성된 공원이었다. 


허준로5길을 따라 한강쪽으로 가다보면 오른편에 바위 아래 동굴이 보이는 ‘허가바위’가 있다. 이 동굴에서 양천허씨 시조가 태어났다고 전해내려와서 ‘허가바위’라는 이름을 붙였단다. 조금만 걸으면 허준 공원이다. 허준선생의 호를 따 ‘구암(龜巖)공원’이라고도 불린다. 공원에는 환자를 진료하는 허준선생 동상이 세워져 있다. 공원 한켠에 작은 연못이 있는데 인공연못이 아니라 올림픽대로가 건설되면서 한강의 일부가 연못처럼 만들어졌다고 한다. 연못 안 ‘광주바위’에도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큰 홍수가 나서 경기도 광주에서 떠내려왔다는 이곳에 이르렀다고해서 ‘광주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데크를 따라 한강까지 걸었다. 한강 건너편에 난지공원, 망월산, 북한산이 보인다. 한시간 남짓 걸었을 뿐인데 이야기꾼 한명이 동행해서 옛날 이야기를 들려준 것 같다. 


“그러니까 저 강 건너에 한산사라는 절이 있었겠지?”
친구는 ‘성주우물 은행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허준공원이 있던 곳이 옛날엔 나루터였다니까 이쯤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면 저 쯤이 되겠네.” 


이야기 속에 선비가 닿았을 강 건너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성주우물 은행나무’에 얽힌 전설은 대강 이런 내용이다. 설화 ‘은혜갚은 까치’의 가양동 버전이다. 


옛날 한 선비가 우물터를 지나고 있었다. 그때 구렁이 한 마리가 은행나무 둥지에 있는 까치 새끼를 잡아먹으려고 했다. 성비는 황급히 활을 쏘아 구렁이를 죽이고 까치를 살렸다. 그날밤, 선비의 꿈에 구렁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낮에 당신이 죽인 구렁이는 나랑 같이 승천할 내 남편이었다. 만약 오늘밤에 한산사 종소리를 듣지 못하면 나는 영원히 구렁이로 남게 될 것이다. 당신은 내일 한강을 건널 때 큰 풍랑 만나 배가 뒤집혀 죽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종소리를 듣게 되면 나는 승천을 하고, 당신도 강을 건널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날, 무사히 한강을 건넌 선비는 간밤의 꿈이 생각나서 한산사로 올라갔다. 한산사의 종 주위를 살펴보니 머리로 종을 치고 죽어간 까치 한 마리가 있었다. 

 


▲ 광주 바위 [문재원 기자]

‘성주우물 은행나무’는 운좋게 살아남아 지나는 사람들에게 아직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양천 허씨의 시조가 태어났다는 ‘허가바위’가 그렇고, 홍수에 광주에서 떠내려왔다는 ‘광주 바위’가 그렇다. 


부디 개발이라는 명목아래 사라지지 말고 오랫동안 남아있길 바란다. 그래서 지나는 사람들에게 허황되고, 부질없고, 믿기지 않은,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기를 바란다.

 

강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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