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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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훈친 프로젝트(7)
  • (재)국제농업개발원
  • 승인 2017.07.04 10:55
  • 호수 354

키워드 : 설증인 선행사건, 설 꼬레야브스키, 고려인 바쟐

저희 재단 하바롭스크 지사장을 맡아 활동하시는 한복순 여사(74)는 극동지역 고려인들 사이에는 아주 유명하신 분입니다. 유식하기도 하려니와 극동지역 러시아 고위간부(특히 고위군간부와 현직 극동개발부 임직원)들 사이에 「만능누나」로 통하는데 저보다 한 살 위인데도 60대 초반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한복순 여사께서 제 블로그의 글을 자주 검색하시는데 제5편 내용의 조카이야기를 읽고 “설증인 아바이”가 고려인 역사에 차가버섯 최고의 전문가인데 왜 설씨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야단을 하시기에 제7편은 설증인 사연을 게제토록 하겠습니다.

러시아를 왕래하시는 여러분들께서 ‘설증인 선행사건’ 이야기를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설증인 씨라는 분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1945년 8월 해방되던 이듬해에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대에 끌려가서 극동러시아의 캄차카, 추코트카, 마가단, 하바롭스크 등의 지역에서 북한 노동자들 통역관과 천연물질 연구를 하시다가 생을 마친 분인데 이분은 생애에 두 가지의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첫째는, 1990년 겨울 돌아가시기 직전에 엄청난 재산을 자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극동러시아 지역의 고아원과 양로원에 기증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농학자로서 타이거와 툰드라에서 자라는 천연식물들을 이용한 민약처방요령의 논문과 저서들을 남겼습니다. 이분이 평소 집필하실 때 필명을 ‘설 꼬레야브스키 또는 설 꼬레야코브’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인삼과 산삼을 연구하시는 분들이 이분의 글을 많이 인용했습니다만 불행하게도 모두가 한국인 인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분을 만나게 된 동기가 하바롭스크에서 조카를 찾았던 것과 비슷한 인연으로 만났고 돌아가시기 전에 수십억 원(한화로 추정했을 때)의 재산을 왜 사회에 기증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저 혼자만이 알고 있습니다. 오늘 그 비밀을 먼저 공개하고 둘째 이야기인 차가와 관련된 민약초 처방을 논할까 합니다.

1990년 초여름 연해주 우수리 농업대학(지금은 극동러시아 국립농업아카데미) 총장인 축산 전문가 데민 박사로부터 극동지역의 최고 농업과학자는 고려인인데 이름이 ‘꼬레야브스키’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KOREA’를 따서 이름을 만든 것 같다는 말도 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주소를 아느냐고 물으니 하바롭스크역 부근에 있는 바쟐에 가서 고려인 장사꾼들한테 물으면 금방 찾을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하바롭스크의 인투어리스트호텔에서 꼬레야브스키라는 설증인 씨를 만났습니다.
설씨는 1946년 극동러시아로 소련군대에 끌려 온 이후 저를 처음 만나는 남한 사람이라고 껴안고 반가워했습니다. 어디를 경유하여 이곳에 왔느냐, 진짜 남한사람 맞느냐, 88서울올림픽을 보고 한 달을 울었다는 등, 한 시간 가량을 혼자서 따발총 쏘듯 말하더니 이제는 가슴이 후련하다면서 저보고 남한 이야기를 해 보라고 하여 제 여권을 보여 주면서 이곳을 오기 위해 한국 김포공항에서 일본 니가타 공항으로 가서 그곳에서 다시 하바롭스크 공항으로 오는 소련 비행기를 타고 왔으며 한국 정부로부터 ‘북방사회주의 국가’ 방문허가는 받아왔고, 분명 한국인이라고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러자 설씨는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를 더 하자면서 처음 만나는 남한 사람에게 주려고 고이 간직한 것이 있는데 당신한테 주겠다면서 자그마한 유리조각 같은 것을 하나 주었습니다. 야쿠치야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얻은 것인데 자기는 이것 말고도 많이 있다면서 가지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것을 가져와 제 집사람에게 주었는데 저나 집사람이나 금반지도 없는 주제에 다이아몬드의 값어치를 알 수가 있겠습니까? 집안에 어디 두기는 한 것 같은데 요즘 생각이 나서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습니다. 각설하고….
설씨는 해방 전에 징용을 피하기 위하여 일본 유학을 갔는데 그곳에서 소련어를 배웠고 1940년도 귀국하여 원산 농업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객지에서 농업교사 생활을 하던 중 해방이 되어 고향인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정암리에 돌아왔는데 38도선 이북은 소련군대에 의한 신탁통치로 인하여 이번에는 농업선생이 아닌 소련어 교사로 재직하다가 이듬해 1946년도 가을 소련군대에 강제 차출되어 극동러시아로 벌목공, 수산공, 탄광공 등으로 팔려가는 북한 청년들의 통역 요원으로 징발되어 버렸답니다. 31세의 노총각 신세를 면하고 신혼 꿈에 젖어 있을 때 청천벼락이 떨어진 것이지요. 부인 역시 교사였던 모양이고, 당시 부인은 출산을 1개월 앞둔 만삭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설씨는 저에게 부인의 생사여부 및 소재와 분명히 아들을 낳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름까지 동수라고 지은 유복자의 소식을 꼭 알아달라고 하였습니다. 1990년 당시 설씨의 연령은 77세였습니다. 아주 건강하였고, 산삼과 웅담, 녹용 등을 중국과의 한약재 무역으로 돈도 많이 모았고 고급 승용차인 올가와 운전사를 두고 있었습니다.
러시아 국적의 여자와 결혼하여 자식들을 많이 두었는데 전부 살림을 차려 분가시켜 주었고 부인은 3년 전에 죽어 지금은 혼자 산다고 하였으며 소련에 있는 재산을 몽땅 한국에 가져가서 첫 부인과 유복자인 자식에게 주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한국에 도착한 즉시 설씨의 사연을 국제농업개발원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상업농경영 1990년 9월호와 10월호에 게재하였고 당시 제가 출강하던 경찰대학교의 학생과 경찰 간부들을 총동원하여 찾아 나섰습니다. 다행히 주문지 읍장(최양길)님의 협조로 설씨의 호적을 찾았고, 1946년  당시 신랑(설증인)을 소련군에 빼앗긴 부인은 한 달 후에 설씨의 예측대로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 첫돌이 되던 해에 고향을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이들 모자를 추적한 결과 아들은 설동수가 아닌 김동수로 호적이 변경되어 있었고, 설씨 부인은 재혼하여 서울 방배동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저와 정부요원(소련담당관)은 설씨 부인과 아들을 만났습니다. 설씨를 한국에 모셔오면 한국 정부는 북한의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또 설씨의 재산을 모두 가져다 올 수 있도록 협조해 주겠다고 설득하였고, 부인과 아들은 설씨가 살아있는 것만이라도 고맙다고 감격해 하였습니다. 재혼한 부인은 동수씨 외에 3남매를 두었고 남편 되는 분은 오래전에 죽었다고 하면서 지지리도 남편 복이 없는 년이라고 한탄하였습니다.
아들은 저와 정부요원과 함께 1주일 후에 생부인 설씨를 만나러 가기를 약속하였습니다. 떠나기로 약속한 날 설씨의 아들은 김포공항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저의 자동차 무선 전화기에 아들은 울면서 “어머니가 45년간 헤어져 죽은 줄만 알았던 너의 아버지가 살아서 온들 무슨 의미가 있으며 너희 아버지는 그곳에서 재혼하여 자식을 두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가지 마라. 네가 생부 만나러 가면 나는 죽는다고 하소연하니 갈 수가 없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부득이 저와 요원 두 사람만 출발하여 하바롭스크 공항에 도착하니 설씨는 이미 꿈에서 아들을 붙잡고 만류하는 부인을 보았다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0일 후 설씨는 모든 재산을 고아원과 노인요양소에 맡기고 스스로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당시 소련 정부에 기부한 재산이 미화로 약 600만 달러 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설씨 역시 제 조카와 같은 민족 분단이 낳은 우리들의 어두운 역사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제 본론인 설증인 씨가 남긴 타이거와 툰드라에서 자라는 천연 식물들의 민약 처방전 이야기를 올리겠습니다.
러시아인들에게는 가장 신성시하는 다섯 가지 식물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용하면 인간과 동물들의 어떠한 병도 고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열거하면
소나무 : 소나무는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1엽송과 송충이가 먹고 송이버섯이 돋아나는 2엽송인 해송과 적송, 리키다 소나무인 3엽송, 잣나무의 5엽송, 낙엽이 되는 7엽송과 9엽송 그리고 가장 솔잎이 많인 11엽송 등 7종이 있는데 이중에서 송충이가 먹고 사는 2엽송이 약이 된다고 합니다. 송이버섯은 살아 있는 소나무 근류층에서 귀하게 자라는데 송충이를 잡아서 송이버섯과 함께 소나무기름(송침유)으로 볶아서 복용하면 건강증진에 아주 좋다고 하여 북한 벌목공들이 지도자 김정일을 위하여 송충이 잡으러 벌목장에 돌아다니는 것을 저도 수 차례 본적이 있습니다.
좌우간 러시아인들은 송충이를 잡아 가루내어 귀하게 먹습니다. 그들은 누에보다 더 큰 송충이가 일생동안 소나무 잎사귀 한 가지만 먹고도 자라는 것을 보면 모든 영양분이 소나무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으며, 설증인 씨의 기록에도 나와 있습니다.

대나무 : 한국에서는 대나무가 자라는 한계지역은 북한 개성지역입니다. 기록에도 정몽주의 선죽교 이야기가 있고, 실제로 지금도 선죽교 부근에는 오죽(줄기가 빨간색)과 쫄대나무가 있다고 합니다. 원래 대나무는 아열대 지역이 원산지입니다. 그런데 북위 47도가 되는 러시아 사할린의 홈스크지역에서 대나무가 자랍니다. 이곳 지역은 서울보다 훨씬 따뜻합니다. 왜냐하면 지하에 석유가 많고 온천 지열이 높아 그렇다고 합니다. 구소련 후르시초프 수상시절, 모스크바와 극동지역 동물원에 중국이 기증한 판다 곰 사료로 사할린의 대나무 잎을 따서 한 달에 몇 번씩 따서 공급했는데 덩치가 50~80㎏까지 나가는 판다 곰이 일생동안 대나무 잎사귀만 먹고 자라는 것을 보면 대나무에도 귀중한 영양소가 골고루 있을 것이라는 것이 러시아인들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한대성 대나무 잎사귀로 스프(죽)를 만들어 임산부들이 먹고 산후회복을 합니다.

뽕나무 : 흔히 야생 뽕나무를 산상(山桑)나무라고 하지요. 이것 역시 누에가 일생동안 잎사귀만 먹고도 자라는 것을 보면 모든 영양소가 다 들어 있는 식물이라고 믿고 있으며 실제로 잎과 열매(오디)를 이용하여 술과 잼도 만들지요. 차가버섯과 오디를 혼합한 잼도 있습니다. 비록 죽은 나무에서 채취하지만 상화버섯도 뽕나무에서 기생하지요. 지금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지역 사람들은 누에가루를 만병통치약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나리 : 미나리과 작물에는 일년생인 당근, 샐러리, 파세리 등이 있고 다년생 연질 초목성인 미나리, 당귀, 독활, 강활, 인삼, 산삼 등과 다년생 목질성인 오가피가 있습니다. 이중에서도 러시아 사람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것은 오가피와 산삼입니다. 이것의 중요성은 굳이 재론치 않겠으나 같은 미나리과 작물끼리 혼합은 효과가 저하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오가피와 홍삼의 혼합은 시너지 효과는 절대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 국내에서 이것들을 혼합한 건강음료를 개발하여 유통하는 업자들이 있는데 잘못된 것입니다(최근 백계 슬라브종족에게는 홍삼효과가 크게 없다는 논문이 발간되었다고 함).

자작나무 : 러시아인들의 국목(國木)은 자작나무입니다. 한국인의 국목이 소나무이듯이 자작나무를 러시아어로 ‘벨로자’라고 합니다. 러시아인들의 이름이 벨로자(자작나무)가 매우 많습니다. 이것은 일본인들 중에 밭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다나카(田中)로 부르는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5가지의 신성시되는 식물 중에서 자작나무가 가장 으뜸입니다. 이것에서 수액(고로쇠)이 나오고, 겨우살이가 자라고 이것의 열매가 나오며 또 차가버섯이 나오고, 자일리톨이라는 껌 원료가 나옵니다. 또한 러시아인들이 신성시하는 버섯은 반드시 살아 있는 나무에서 생성된 것이라야 합니다. 사실상 차가와 송이뿐이지요. 저는 설증인 씨가 설명한 벨로자 버섯이 바로 차가라는 것을 한참 후에 알았습니다. 차가버섯에 홍삼 그리고 겨우살이 혼합이나, 차가버섯에 오가피와 겨우살이 혼합이 아주 좋다고 민약 처방에 나와 있습니다. 또 차가와 한 대성 대나무(흔히 쫄대라고 하며 줄기는 엄지손가락 굵기만큼 하고 키는 2.5m 정도 자라는데 고려인들은 이것을 담뱃대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어린 새순의 혼합도 좋고, 차가와 뽕나무 혼합도 매우 좋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차가와 소나무와의 관계는 이미 수차례 거론했기 때문에 재론치 않겠습니다.

상기 내용의 5가지 식물들의 잎사귀나 뿌리들을 차가와 혼합하면 절대적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설증인 씨는 경험을 통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오늘 설증인 씨의 영전에 다시 이 글을 올리면서 삼가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

(본 내용은 2004년 상업농경영 6월호 기획특집 “이병화 차가(chaga) 이야기를 재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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