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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 의료봉사의 길을 걸어온 ‘한국의 슈바이처’ 임일규 한의사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 승인 2017.11.06 16:51
  • 호수 358

56년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의 의술로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언제 어디든 달려가 보살펴주었던 의로운 한의사가 있다. 올해 여든이 넘은 나이이지만 3년 전 은퇴하기 전까지 국내는 물론, 수많은 타국까지 찾아가 병든 사람을 위해 의술을 펼치는 한국의 슈바이처 강원도 춘천의 임일규 한의사가 바로 주인공이다.

임일규 한의사는 일송 박성수님의 제자로 ‘의술은 봉사의 마음으로 행하라’는 스승 박성수님의 가르침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면서, 그 때의 결심이 56년간 의료봉사를 실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한국 한의학을 빛낸 인물 중에서도 특히 독립운동가이며, 최초로 해외 수출된 의약품 ‘솔표 우황청심환’을 만들어 국민건강에 이바지하였고 최초의 한의대학 동양의학대학을 주축이 되어 세우신 일송 박성수님이야말로 근대 한의학을 빛낸 최고의 인물이자 자신의 최고의 스승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나는 일송 박성수님의 회고록을 준비하면서 여러 차례 임 한의사를 만났는데, 맑고 순수함이 마치 신선이 세상에 내려온 듯한 감명을 받게 했다. 그가 평생 수집한 소중한 많은 자료들을 경희대학교에 기증했으며, 그의 자녀들은 봉사인생 50주년을 기념해 ‘황금종’을 선물하기도 하였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한의학에 관심을 갖다.
한의는 임일규 한의사 집안의 3대째 내려오던 가업으로 장남인 그에게 부모님의 권유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아버님의 진료활동을 옆에서 보면서 자신도 나중에 한의사가 되어야겠다는 굳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거동조차 힘들었던 중풍환자가 침을 맞고 씩씩하게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고, 경기하며 숨이 곧 넘어갈듯하던 어린아이들이 침을 맞고 진정이 되는 모습이 신기하여 그는 1955년 동양의학대학(현재 경의대학교 한의과대학의 전신)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한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사람이 먼저다.

진료실 한편에 있는 각종 감사패와 봉사상들이 임일규 한의사의 봉사인생을 설명해준다.

동양의학대학 졸업 후 임 한의사는 1959년 서울 성동구 왕십리에 ‘임성한의원’을 개원했다. 당시 왕십리는 도심지와는 동떨어진 빈민촌이 밀접해 있는 곳으로, 첫 한의원을 빈민촌 근처에 잡은 이유가 항상 자기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어려운 사람을 먼저 돌보자’는 봉사에 대한 각오 때문이었다.

1969년에 성동구 한의사회 회장직을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임일규 한의사의 의료봉사활동이 시작되었다. 당시 성동구분회 소속 한의사 14명을 조직하여 한의원이 휴원하는 주말마다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변두리 지역을 순회하면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다. 점차 강원도, 충남 등 의료 환경이 열악한 농촌지역 의료봉사로 확대되었고, 강원도 양주군 사회복지관에서 대학동창들을 동원해 ‘이동 한방병원’을 운영하면서, 한의사회의 최연소 분회장 직책으로 그의 의료봉사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불태우며 ‘청년 한의사 임일규’의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고향으로 내려오다
그가 50세가 되던 해에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춘천으로 내려와 한의원을 열었다. 대도시에서의 부나 명예보다 고향 춘천에 대한 애향심으로 인생의 후반기를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강원도의 오지를 돌며 정기적인 의료봉사활동을 열심히 이어갔다.

그러던 중 그렇게 산발적으로 의료봉사를 하기 보다는 한 곳을 정해 집중적으로 꾸준히 봉사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1993년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어 꾸준한 한방진료와 건강 상담. 강좌를 실시했다. 무료 한방진료 뿐 아니라 방역소독, 예방접종, 종합민원상담, 학생들 장학금 지원, 어르신들 영정사진 제작 등 의술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도 봉사활동을 이어나가면서 마을 주치의와 도우미 역할까지 자처하게 된 것이다.

국내, 해외를 가리지 않은 반세기의 의료봉사 활동

임일규 한의사의 국내 및 해외의료봉사활동 모습들이다.

임일규 한의원의 진료실 한 쪽 벽면에 자리한 커다란 세계지도에는 구석구석 스티커가 붙어있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나라들, 우즈베키스탄, 몽골, 러시아 사할린, 중국 등등 스티커가 붙어있는 수많은 지역이 바로 임일규 한의사가 해외 의료봉사활동을 다녀온 지역들이다. 모든 지역이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임은 물론이다.

많은 나이에도 해외의료봉사를 서슴지 않았던 그는 기후와 풍토, 언어의 장벽은 물론 불편한 환경과 위험한 상황까지 감수해야하는 고된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일생을 통해 어려운 자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온 것이다. 해외에서 한방 치료를 처음 첩하는 현지인의 거부 반응과 낯선 나라에서 온 의료진에 대한 신뢰문제도 애로사항이었다. 심지어 한약의 반입이 금지된 국가도 있어 세관 통과에 어려움도 있었고, 마약으로 오해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픈 사람들을 향한 인술에 대한 그의 열정은 항상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최고의 해결사였다고 회상한다.  

러시아 사할린 지역에서의 봉사활동을 하던 그는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우리 동포들이 머나먼 타국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어렵게 살면서 영양부족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미어져 내렸다. 어느 지역보다 더 열심히 의료봉사를 하였지만 귀국하고도 항상 사할린 동포들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고 말한다.

어렵고 고된 해외 의료봉사활동 중 무엇보다도 큰 보람은 역시 자신이 돌본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았을 때라고 말한다. 봉사활동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자신이 한의사가 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도 방법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지만, 자신이 선택한 한의술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항상 감사한다면서 세월이 지나고 보니 자신이 베풀고 봉사한 것이 아니라, 반세기의 의료봉사를 통해 오히려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게 한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의술보다는 인술이다.
그렇다고 해서 임일규 한의사가 평생을 의료봉사에만 전념한 것은 아니다. 1998년 한방병의원 경영학회를 창립하여 초대회장을 역임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다. 대학에서 병원경영학 강의 중에도 경영을 잘해 돈을 버는 방법보다 ‘올바른 의사’가 되는 방법을 항상 강조하던 그였다. 환자를 내 가족이라 생각하면서 따뜻하게 대한다면 병원 경영이 다소 미숙하더라도 결국에는 존경받는 한의사가 될 수 있으니, 인간의 도리를 다 할 때 비로소 자신의 지식이 빛나는 것이 아닐까라고 주장한다. 의술은 넘쳐나지만 인술이 부족한 현대사회에서 널리 사랑과 봉사의 인술을 펼쳐온 그의 실천적 삶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가 후학들에게 강조하는 두 가지가 바로 겸손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다. 겸손의 마음이란 자신이 중심이 아닌 환자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자는 것이다. 둘째는 환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한의사는 고압적인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의학철학을 갖고 먼저 따뜻한 마음을 실천하는 의사가 되어야 참다운 의사가 된다고 믿는 것이다.

일송 박성수님의 기념사업을 준비하는 일송재단 이유미 이사장(좌)에게 오랫동안 간직해오던 일송 박성수님의 자료를 제공하는 임일규 한의사(우)

(일송 기념사업회를 준비하면서 몇 년 전에 나는 강원도 한의학협회 명예회장인 임일규 한의사를 처음 만났다. 이미 임일규 한의사가 한의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시아버님이신 일송 박성수님의 제자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송 박성수님의 회고록을 준비하면서 만난 자리에서 임 한의사는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오던 빛바랜 자료들을 내어주시면서 내 손을 꼬옥 붙잡고 ‘자손들도 하지 않는 훌륭한 일을 며느님이 하시니 너무도 감사하다’면서 부족한 나를 격려해주셨다.

일제에 의해 해체위기에 처했던 한의학이 일송 박성수님의 열정과 카리스마로 되살아났으며, 애국애족의 마음과 민족의학인 한의학을 바로 세워 국민 건강장수에 이바지하고자 하시던 일송 박성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어달라고 당부하셨다. 한의사들이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꾸지람을 하시던 일송 박성수님의 뜻을 조금만 일찍 후학들이 깨달았다면 지금쯤 한의학의 위상이 높아졌을 것이란 안타까움도 토로하신다.

반드시 일송 박성수님의 유지를 받들어 일송재단에서 국민의 건강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을 신신당부하셨다. 온 국민이 건강하게 장수하는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뜻은 스승 박성수님과 제자인 임일규님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루고자하던 꿈이 아닐까!
평생을 한의학과 의료봉사로 최선을 다해 살다가 몇 년 전부터 의료봉사의 나래를 접고 자연인으로 돌아간 임일규 한의사. 한국의 슈바이처 임일규님의 건강과 장수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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