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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의 균형이 깨지면 질병이 유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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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19 10:49
  • 호수 362

건강한 사람들은 몸의 균형이 잘 맞는 사람이다. 뼈의 틀어짐은 곧 근육과 신경, 나아가 내부 장기의 긴장을 유발하여 질병을 가져온다. 이런 뼈의 틀어짐을 손쉽게 스스로 고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멀쩡한 뼈를 잘라내고 철사로 잇는 무자비하고 어리석은 수술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나마 최근 들어 디스크란 병은 없다며 수술을 하지 않고 문제가 발생한 뼈와 근육을 스트레칭과 간단한 생활습관을 고쳐서 치료할 수 있다는 진실을 밝히는 의사들이 늘어나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뼈의 균형이 깨지면 어떻게 질병이 유발되는 지를 나의 경험담을 통해 알아보고 어떻게 디스크질환이나 뼈와 근육의 문제를 고칠 수 있는 지를 함께 나누고 싶다.


사고로 약골이 되어버린 나의 어린 시절

나는 춘천 태생이다. 춘천의 겨울은 유난히 더 추운데, 내가 다섯 살 되던 해 겨울 길가에서 얼음을 지치고 있는 아이의 썰매를 빌려 스틱을 얼음에 꽂고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썰매가 아닌 내 몸이 앞으로 고꾸라져버렸다. 얼음에 턱을 다치고 입술이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다고 한다. 그 후부터 난 자꾸 넘어져 다리가 성한 날이 없었다. 그러다 7살이 되던 해 빗길에서  뛰다 넘어져 복숭아뼈가 탈골되었다. 그 사고로 허벅지까지 석고 기브스를 하고 6개월을 지냈다.

체력장에서 달리기를 열심히 해도 점수가 없을 정도로 뛰는 속도도 느렸고, 철봉에 매달리기는 1초도 하지 못하고 바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악력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30세에 부주의로 꼬리뼈를 다쳤다. 결국 30대 중반이 되어서는 목과 허리 디스크로 판정받아 고생했다. 발목도 자주 삐고, 그러다 화장실에서 넘어지면서 발가락까지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다. 그런 일련의 사고로 인해 나는 척추측만과 목 디스크와 허리 디스크로 오랜 세월 고생했다.

뼈의 균형이 몸 전체적 건강에 얼마나 깊이 관련되어 있는 지를 이런 경험을 통해 절실히 실감하게 되었다. 두개골에서 치아와 턱관절, 경추와 흉추, 요추, 꼬리뼈와 고관절, 심지어 발가락과 손가락까지도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우리의 내외부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뼈이다.


뼈는 골격을 잡아주는 역할만 할까?

다섯 살 때 사고로 다친 후유증 때문일까? 나는 항상 다른 친구들이 뛰어노는 것만 바라보고 정작 활발히 놀지도 못했고 운동은 더더욱 못했다. 몸이 틀어져 근육과 피덩이인 장기들도  제 기능을 못했던 것이다.

책상에 앉으면 다리가 부어올라 귀가 후에는 앉은뱅이책상에서 공부했고, 잠을 잘 때는 항상 다리를 올려놓고 자야했다. 추위를 남보다 더 심하게 타고 걸핏하면 체하고 항상 힘이 없고 피곤했다. 편도선이 많이 부어올라 초등학교 시절 결석하는 일도 잦았다.
이런 건강상의 문제들이 어릴 때의 작은 사고로 턱을 다쳐 생긴 일련의 일들이라는 걸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몸이 틀어지면 얼굴도 틀어진다.

어느 날인가 내 얼굴이 틀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보면 코가 한쪽으로 심하게 쏠려있어 정면을 보고 있는데도 마치 측면을 보는 듯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턱뼈를 다친 여파로 코와 두개골까지 틀어지고 결국 목과 허리를 비롯한 온 몸의 뼈들이 틀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로 인해 30대에 목과 허리 디스크가 오고 40대 후반에는 오십견이 양어깨로 번갈아 왔으며 허리통증으로 오래도록 고생하게 된 것이다.


괄사로 스스로 오십견을 고치다

중국에 살던 시기에 나에게 오십견이 찾아왔다. 오십견 증상이 심해서 양 어깨의 높이가 현저히 달랐고, 옷을 벗고 입기도 어려웠으며, 망가진 인형처럼 몸이 한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러다가 남편의 지병을 고치려고 방문한 중국의 양생관에서 뜸. 괄사. 추나 등 다양한 자연요법들을 알게 되었는데, 내 어깨 상태를 보고 괄사를 권하여 처음 괄사요법을 경험하였다.

손과 도구로 내 어깨와 팔을 두드리고 긁었는데 괄사를 받은 팔에 온통 멍이 올라왔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내 팔을 보고 놀랐는데, 아무리 치료를 받았다고 설명해주어도 도대체 믿지를 않고 엄마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흥분한 일은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불편한 팔의 상태가 많이 호천되었다. 이 사건은 내가 괄사 매니아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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