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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시작한 ‘김치유산균’ 연구개발서울대 생명과학부 정가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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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18 15:41
  • 호수 365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 바로 미생물이다.  인류가 처음으로 미생물을 관찰한지도 벌써 300년이 넘었다.  미생물은 인류의 식문화는 물론이려니와 건강, 환경, 의약품, 에너지, 그리고 여러 분야에서 인류의 생활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점차 부각되는 미생물의 중요성과 미생물학과가 없는 나라의 이율배반
우리나라에서도 미생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에 “미생물학과”를 설치하기로 결정된 것이 1969년 말이었으며, 1970년 3월에 첫 입학생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미생물학과”는 2000년 2월 말로 없어지고 생명과학부로 재편되었다.
서울대학교를 비롯하여 국공립대학은 물론 유수의 사립대학교에서도 미생물학과와 관련학과가 하나둘 자취를 감추더니  이제는 대학원아닌 대학학부에서 미생물학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사라지게 되었다.

경제성장에 따른 먹거리의 대변혁
1980년을 전후하여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도약하기 시작하였으며,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그야말로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일 년에 몇 번 먹지도 못하던 고기를 성인병을 걱정해야할 정도로 먹게 되었고, 거리에는 너도 나도 자가용을 굴리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우리들이 살던 모습과는 정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를 보였고, 이 때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자신감이 넘치고 어려움을 모르며, 국제적으로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훌륭한 국민들로 성장해 왔다. 참으로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말로 우리나라는 국제적인 국가가 되었다.  물론 올림픽이라는 엄청난 행사를 치러 냈던 저력이 뒷받침되었겠지만, 대학원 세미나에도 많은 수의 외국 연사들을 모시게 되기도 하였고, 해외에 안 다녀온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많은 기업들은 해외로 진출하였고, 외국에 갔을 때 우리나라의 자동차가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것을 보지 못할 나라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경제발전과 따로 가는 식품안전 불감증 ‘팩막걸리 사건’
이때쯤 오염된 수출용 팩막걸리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유명 양조회사의 부탁을 받았다. 막걸리 항아리 위로 파리가 날아다니고, 천정에는 쥐들이 돌아다니고, 도로 쪽 창문들은 열어놓은 채 매연에 노출되어있었으며, 바닥에는 청소용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벽에 핀 곰팡이는 오래되었고, 직원이 술 항아리를 젓던 나무 주걱의 삭은 밥풀을 맨손으로 훔쳐내는 지경이었다.  

그런 위생문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단지 포장 라인과 관련된 제조업체 직원들을 불러 놓고 내게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판정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발효실 내부부터 해결하고 다음에 이야기하자며 많은 것을 지적해 주고 돌아왔다.

나를 미생물 연구와 인연 맺게 한 무늬만 국산인 ’송어 양식장’
어느 해 동해안에 연어가 돌아올 때 미국에서 온 두 사람의 교수와 연어과 어류에 감염하는 어떤 바이러스를 채취하기 위하여 양양 남대천에 간 적이 있었다.  그 후 정선과 평창에 위치한 송어 양식장과 인연이 되어 이 바이러스의 백신을 개발하고 실제로 임상실험까지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어느 날 부화된 지 얼마 안 되는 치어들에게 유산균을 먹이에 섞어 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유산균을 먹이면 치어가 건강해지고 사료 효율이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일본 제품이었으며, 가격은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상상 이상으로 비쌌다.  그렇지 않아도 송어 양식 초창기에 미국이나 일본에서 알을 수입하고, 치어 먹이는 덴마크 사료를 먹였고, 병이 나면 일본수입 항생제를 먹였으니, 송어를 기르는 사람과 물만 국산인 셈이었다. 그렇지만 곧 송어들은 내가 배양한 김치 유산균을 먹으면서 무럭무럭 자라게 되었다.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시작한 ‘김치유산균’ 연구개발
1980년대 말까지 유산균을 외국으로부터 사오다가 1990년대에 들어 유산균을 기르기 시작하였다. 유산균은 먹이 요구 조건이 다른 미생물에 비하여 좀 까다로운 편이다.  유산균 배양을 위한 배지 제작을 위해 외국에서 수입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런 사정은 아직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물론 개선하려는 노력으로 일부 수입 재료를 크게 줄이는 새로운 배양 방법이 개발되기도 했다. 김치에 들어있는 유산균들은 그렇게 까다롭지 않다.

강력한 성능의 ‘김치유산균의 미래’
그야말로 독립 운동하는 심정으로 시작한 나의 김치유산균의 연구개발은 아직 세계시장에서 그 빛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우리들이 즐겨먹는 김치에서 분리된 유산균들이 서양에서 온 유산균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국제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김치에서 분리한 유산균들은 종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생쥐 실험에서 조류 독감 바이러스에 저항력을 길러주며, 일부 고형암에 대하여 항암효과와, 생쥐는 물론 사람에게 실험 해 본 결과 비만억제 효과가 있다.  변비 해소는 물론 정장 작용을 통하여 순환계에도 좋은 효과를 보여, 얼굴도 환해져서 ‘먹는 화장품’이라고 불린다. 동치미나 오이지와 같은 형태의 김치에서 관찰되는 유산균의 성장은 서양식 배양 방법에 비하여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소금발효식품 속 토종미생물의 찬란한 미래와 역행하는 교육현실
우리나라의 토종 미생물 중 김치에서만 2000년대 초에 6가지 이상의 유산균이 등록되었고, 우리 연구실에서도 진균(곰팡이와 버섯류)의 성장을 억제하면서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물질을 분비하는 신종 방선균을 찾았다. 노환자의 경우 면역력이 떨어져 곰팡이에 의한 폐렴으로 사망하는데, 이런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미생물학의 전문 인력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전문 인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가 없는데, 대학의 미생물학과가 사라져버린 현실이 암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학에서 제대로 배우지 않고 대학원에서 전문과정을 공부하는데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생물 세계에서도 독립운동이 절실히 필요하다!
눈보라가 날리는 만주 벌판에서 독립군들은 나라를 되찾을 뜨거운 애국심으로 잠을 청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간난 아이를 두고 고향을 떠나 나라 지킬 마음 하나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던 독립군들의 심정으로 누군가는 사라져가는 우리의 소중한 미생물을 지켜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술을 믿지 못하여 외국에서 사오는 미생물 혹은 미생물이 만드는 상품들이 대단히 많다.  젊은 사람들 가운데 김치 담글 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며, 전통주를 만드는 것은 고사하고 이름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나아가 된장이나 간장은 이제 만들어 볼 생각이라도 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인류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발전에 큰 힘이 될 ‘우리의 고유 미생물’
인간의 99%를 차지하는 놀라운 미생물의 세계를 통해 인간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게 될 것이다. 특히 우리에게는 조상들이 물려준 미생물학적 유산이 대단히 많다. 우리 고유의 미생물이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생활에 응용하게 된다면, 신 약품과 신 에너지와 환경의 개선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혜택이 돌아올 것이다. 한국민의 크나큰 경제적 이득과 더 나아가 전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대학에서 ‘순수 학문’이라는 말을 접하고 가슴이 찡하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살다보니 공부하는 내용들이 반드시 순수 학문으로만 남아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학문은 서로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더 깊이 있게 발전하고 인류와 생명체들에게 도움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동화를 보면 도깨비와 친하게 된 덕에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은 도움을 받기도 하고 사이가 틀어져 도깨비의 앙갚음을 받는 이야기가 있는데, 미생물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을 잘 알고 친하게 지내면 우리가 그들에게 베풀어준 것 이상으로 돌려주지만, 서로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음식물을 상하게 하고 병을 일으키고,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들기도 한다. 결국 작은 미생물에 의하여 인간은 목숨을 잃기도 한다.

진정한 우리나라 미생물학의 광복을 꿈꾸며!
어떻게 하다가 나는 이렇게도 발전된 조국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만주를 향해 새벽길을 떠나는 독립군의 심정으로 우리나라 미생물학의 광복을 꿈꾸며 외로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정인보 선생은 없었던 나라를 세우는 것은 독립이며, 원래 있었던 나라를 잃었다가 되찾은 것은 ‘광복’이라고 불러야 옳다고 하셨다. 조국의 광복이 이루어져 마침내 되찾은 조국의 품으로 돌아갈 미래를 꿈꾸던 광복군의 심정으로 오늘도 나는 묵묵히 미생물학의 광복운동의 외로운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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