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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어머니 간호패전기 제11편 - 언제까지 집에서 간호를 할것인가, 결심을 굳히다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 승인 2018.07.19 10:00
  • 호수 366

2015년 6월 29일 월요일부터 어머니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월요일은 데이 서비스에서 보내고, 금요일은 반나절동안 재활시설에 다닌다. 그 사이의 요일에도 점심에 도우미가 방문해 생활을 보조한다. 4월에 동생이 공적 간호보험 제도를 이용하도록 한 후, 실제로 요양 간호 1급을 인 받아, 관리 스케줄을 다시 짜는데, 다시 거의 3개월이 걸렸다. 5월의 재활시설 참가로 시작부터 조금씩 간호의 부담은 줄어들었다. 요실금은 괴로움의 씨앗이었지만, 여기부터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지 않고, 도우미 등과 협력해 가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생활의 시작과 동시에 사건이 일어났다. 다시 한 번 관리체제를 다시 짜야할 정도의 중대사였다. 어머니가 넘어지신 것이다. 정확하게 쓰면, 아무도 넘어졌다는 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본인도 기억하지 못한다.

데이 서비스에 처음 가던 날 "왼쪽 어깨가 아프다"
노인에게 넘어지는 것은 공포다. 근력도 반사신경도 쇠약하기 때문에 재빨리 몸을 방어하는 것이 어렵고, 부상당하기 쉽다. 뼈도 약해져 있기 때문에 골절당하기 쉽고, 특히 다리가 골절되면, 그대로 누워서 지내게 될 수도 있다.
6월 28일 일요일, 일어나자 어머니는 "왼쪽 어깨가 아프다"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가끔 다리의 통증을 호소하는 일이 있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하루 만에 나았기 때문이다. 부위는 다르지만 늘 그런 통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29일, 처음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데이 서비스에 가는 날을 맞았는데도, 여전히 어머니는 "어깨가 아프다"고 하셨다.
"아프니까 가지 않는다"고 어머니는 말한다.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보내는 것을 도우러왔던 도우미 K 씨와 어떻게 할지 상담한다. 어쨌든 첫 날이다. 오늘을 잘 넘어가지 못하면 "싫다, 안간다"고 포기해 버릴 지도 모른다. 어깨의 통증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신경이 쓰이지만, 잘 달래서 보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나, 그리고 도우미 K 씨, 그리고 데리러 온 직원 3명이 불평하는 어머니를 달래서 데이 서비스 첫 날을 넘겼다.

오후 5,시 어머니가 돌아왔다. 어깨가 움직이지 않도록 보조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프셔서, 오늘은 보조기를 하시고 쉬셨습니다"라며 데려온 직원이 말한다. 정말 이상하다. 언제나 아프다던 다리의 통증과는 상황이 다르다.
다음 날인 30일 아침, 어머니는 일어나지 않았다. 2층의 어머니 방으로 깨우러 갔더니, 어머니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끙끙거리며 신음을 하고 있었다.

"자 일어나셔요"하고 이불을 들추자, 난 겨우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이불 속에 웅크린 채, 소변과 대변을 흘렸던 것이다. 통증때문에 일어날래야 일어날 수 없어, 화장실에 갈 수 없었던 것 같았다.

병원복도까지 울리는 어머니의 비명
촬영한 렌트겐 사진을 보더니, 정형외과 의사는 큰 소리로 말했다. "이건 탈구입니다. 완전히 빠져 나왔어요"
"뭐요?"하고, 나는 꽤나 엉뚱한 소리를 했다. 설마 탈구같은 큰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나도, 학창 시절에 유도를 해봐서 어깨 탈구를 당한 적이 있지만. 이것은 진짜 아픕니다. 언제 탈구했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다만, 일요일부터 아프다는 말을 했습니다만 ......"

"...... 안됩니다. 이건 이미 나 혼자의 힘으로는 무리입니다. 끼우려면 몇 명이 필요한데,종합병원에 소개장을 쓸테니까, 바로 가세요"

소개장을 가지고 종합병원까지 다시 택시로 달렸다. 종합병원의 정형외과에는, 바로 전 의원의 의사로부터 전화 연락이 가 있었다. 곧 어머니는 치료실로 안내되었다.
복도까지 어머니의 말로 표현할 수없는 비명이 들려 온다. 좀처럼 맞춰지지 않는 것 같아, 사이를 두고 비명은 몇번이나 몇번이나 계속된다. 여기서 안되서 수술이라도 하게되면 큰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비명이 멈추고 치료실에서 어머니가 나왔다.

"3명이 달려 들었는데, 어떻게든 낄 수 있었습니다. 2주 동안은 팔 전체를 압박대로 고정하고 어깨를 움직이지 마십시오. 나았다고 생각해도 당분간은 탈구가 쉽게 일어나기 때문에 주의하십시오"

안심했다. 마음 속으로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어머니의 생활 스타일을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래 층으로 생활의 거점을 옮기다
종합병원에서 계산을 기다리는 동안, 케어 매니저인 T 씨에게 전화를 해 사정을 말했다. "상상입니다만, 아마 밤에 화장실을 보러 일어났다가 넘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다 손을 잘못 짚는 바람에 왼쪽 어깨를 탈구 한 것인데, 그것을 본인은 잊어버린 것입니다"

T 씨는 기민하게 반응했다.
"알겠습니다. 조속히 임대 업자에게 연락해 간호침대를 준비할게요. 오늘 저녁부터 필요하네요"

이때 나는 결심했다. 넘어졌다고하면, 원인의 하나는 계단의 오르내림이 아닐까. 이번에는, 알츠하이머 병 때문에 자신이 넘어진 것을 기억할 수 없어 탈구 치료가 지연되었다. 비슷한 상황을 반복할 수는 없다.

이제까지 어머니는, 2층의 자신의 방에서 생활해왔다. 하지만 이제 무리일 것이다. 어머니의 생활 중심을 1층의 응접실에 내리자. 거실을 중심으로 어머니가 쾌적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속히 구축하자.

임대한 간호침대는 그날 오후에 도착했다. 응접실은 아버지가 건강했을 때는 자신의 서재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줄곧 비워두고 아무 것도 놔두지 않았다. 거기에 간호침대를 설치한다. 추락 방지용 울타리가 붙어있고, 전기장치로 신체를 내라고 올리는 구조다. 침대에는 전용 방수시트를 깔아 요실금에 대비 하도록 했다.

"오늘부터 여기서 주무셔요"라고 하자, 어머니는 "어깨가 나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겠네"라고 말했다.

아니, 어깨가 나을 때 까지가 아닌데, 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제 2층의 방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앞으로 계속 이 거실에서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어디까지 자력으로 간호할 지를 판별한다
늙는다는 것은, 그 어디를 끄집어 내도 돌이킬 수없는 과정이다. 하지만, 평소에는 그 것을 의식하는 일은 별로 없다. 탈구에 따른 간호용 침대의 도입과 같은,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원래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다시금 인식하고 그 무상함에 탄식한다.

그 생활이 오늘로 끝인 것이다. 이제 그 방에서 어머니는 잘 수가 없다. 작은 일이지만 하나의 삶의 기억이 종료된 것이다.
그런 감상과 동시에, 아침에 잠자리에 흘린 변을 처리하고 나자, 내 안에서 "어디까지 어머니를 이 집에서 간호할 것인가" 라는 전망도 생기고 있었다
어머니가 자신의 배설을 콘트롤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이 집에서 어머니를 간호하자. 요실금은, 소변 누설방지 패드를 붙이는 것이 익숙해진다면, 어머니 본인이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변을 흘리게 되면 그야말로 혼자서의 간호는 어려워 질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제대로 배설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근원적인 존엄성의 근원인 것이다. 나는 탈구 소동을 계기로, 어머니가 자신의 능력으로 그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집에서 간호를 계속할 여부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었다.

그 생활이 오늘로 끝인 것이다. 이제 그 방에서 어머니는 잘 수가 없다. 작은 일이지만 하나의 삶의 기억이 종료된 것이다.

- 2017年6月1日 松浦 晋也(마츠우라 신야) / 번역: 오마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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