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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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우리집 제리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 승인 2018.10.01 11:21
  • 호수 368

2012년 8월 30일
중국 상해에서 아들 성화에 한국 돈 백만원에 가까운 거금을 주고 강아지 한 마리를 샀다. 더위에 약한 시베리안 허스키가 집에 오자마자 감기로 컹컹대더니 중국 아줌마가 무관심하게 뙤약볕에 매여 놓아 더위를 먹고는 비실거리다가 아들이 지은 이름처럼 fang하고 떠나버렸다.

집에서 생명이 죽어나간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려 아줌마에게 웃돈을 주고 조용히 인력거에 실고 나가 잘 묻어주라 했는데, 어디서 들었는지 이웃 중 한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는 자신이 키우던 다리 짧은 웰시코기 한 마리를 아들에게 주었다.

아들은 제리를 이층 자기 방에 데리고 들어가 같이 자고, 위 아래층을 같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통에 털이 날려서 부엌에서 밥을 짓는데도 개털이 날려 들어갔다. 알고 보니 웰시코키는 가장 털이 잘 빠지는 종류의 개였다.

참다 참다 못해 일 년쯤 키우다가 마당으로 쫓겨난 제리는 개집에 목줄을 하고 묶어 살았다. 자유롭게 풀어놓고 키우다 묶여 있자니 제리는 정신이 나간 듯 행동했다. 우-우-우- 자주 울부짖어서 나는 귀를 막고 눈을 막아 듣고 쳐다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지냈다.

아이큐가 높아서 일까? 원망하듯 날 바라보고 울부짖는 제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 결국 다시 집안에 들여 놓고 그 때부터 다시 나는 개와의 전쟁을 하며 살았다.

어릴 때 등교 길에 동네 개에게 물렸던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반려견 하나를 돌보는 것이 어린 아이 키우는 것만큼 힘든 일이라서 일까 나는 너무 부담스러운 책무에 제리가 싫었다,

8년의 중국생활을 끝내고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서 시차를 두고 제리도 한국에 들어왔다.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고 나와 제리만 집에 덩그라니 남았다.

나는 마음이 안정되지 못해 밖으로만 돌고 밖으로 돌아야 할 강아지는
오히려 집에 갇히는 상황이 시작되었다. 나도 제리도 못할 노릇이었다...
혼자 있다는 스트레스로 대소변을 가리는 녀석인 제리는 여기 저기 소변을 갈겨놓으며 반항을 표시했고, 산책도 많이 부족했다.

아들에게 내가 더 이상 돌볼 수 없으니 다른 주인을 찾아주자고 협박처럼 말하고 결국 아들은 좋은 사람에게 줄 것을 약속받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싫던 좋던 10년 넘게 집에서 키우던 제리를 다른 주인에게 넘겨주고 돌아온 날 밤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애써 불편한 생각을 지우려 해도 며칠 후에는 꿈에 제리가 보이더니 급기야 우는 소리까지 환청으로 들린다. 아무래도 미심쩍어 전화를 해보니 나에게 이야기도 없이 제리를 다른 집으로 보냈다고 한다.

불편한 마음이 불길한 생각으로 비약되어 결국 천안으로 차를 몰고 가서 제리를 집으로 다시 데리고 돌아왔다. 오는 길에 휴게소에 들려 제리가 좋아하는 하드를 사서 나눠 먹었다.

개는 돌아와 다시 집에 갇히고 나는 다시 밖으로 돌고 있다. 제리가 돌아와서 기쁜 건지 아니면 밖이 그리운지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제리가 돌아와 다소 고생스럽긴 하더라도 나는 마음이 편하다.

그날 밤 난 두 다리 쭉 뻗고 푹 잠을 잤다. 탕자가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마음이다. 제리도 지금 내 침대 옆에 누워 늘어지게 잠을 잔다.


2018년 8월 30일
이제 제리는 나이가 더 들어 20살이 가까워졌다. 두달 전 비장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다. 그 동안 아들은 중국에서 키우던 제리를 한국으로, 다시 한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다시 한국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파란만장한 일들을 함께 겪었다.

수술은 했지만 말기암으로 올해를 못 넘기고 제리는 아들 곁을 떠날 수도 있다. 제리는 아들의 지극한 사랑과 정성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지만 아들은 지울 수 없는 이별의 상처를 가슴 한켠에 안고 살게 될 것이다.

만남은 이별을 낳고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낳는다지만 두 번 다시 힘든 이별의 아픔을 겪지를 원치 않기에 아마도 아들은 두 번 다시 반려견을 키우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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