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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경제학의 泰斗 박진환 박사

동북아 국가들이 도농간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

기사승인 : 2010-02-01 13:10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도농간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를 고찰했습니다”
한국 농경제학의 泰斗 朴振煥 박사

   
 

한국 농업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박진환(84세) 박사가 신간「동북아시아의 경제발전과 농가소득 증대문제」를 발간했다. 박진환 박사는 팔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세계경제동향과 농업환경을 주시하고 자료를 분석하여 집필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평생학자’ 박진환 박사를 만나 신간에 담은 그의 메시지를 들어보았다.

신간 「동북아시아의 경제발전과 농가소득 증대문제」을 출간하게 된 배경은?
 
   
 
유럽, 미국 등 서구 여러 나라의 기후환경을 볼 때 강수량이 많지 않아 밭농사가 발달했다. 밭농사는 경제가 발전할수록 농가의 경지면적은 증가한다. 인구밀도가 적은 곳은 더 늘어나 한 농가가 수십, 수백ha를 경작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산업화가 발전하면서 농업에 종사한 사람들은 규모의 경제로 도농간의 소득격차를 해소할 수 있었다.
동북 아시아 지역은 여름이 무덥고 강수량이 많다. 이를 아시아 몬순지대라고 하는데, 강수량이 1500~3000mm나 된다. 이런 땅에서 우리 조상들은 벼농사를 해왔다. 벼는 못자리를 만들어서 물을 대고 모를 심는데, 기계의 힘을 빌리더라도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이렇게 사람의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벼농사는 호당 경지면적이 서구처럼 넓지 않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동북아시아 각국은 수출 경제로 발전하면서 적은 농지를 가진 농촌근로자와 도시근로자의 소득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각국은 이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를 역사적ㆍ사회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책을 내게 되었다.

동북아시아 각국의 사례를 간단하게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본의 경우, 역사적으로 도쿠가와 봉건시대이후 지방분권적 체제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縣은 영주가 있던 지역이다. 영주는 선거를 안해도 주민들에게 지지만 받으면 자손대대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영주제도로 인해 지방별로 특색 있는 산업이 발달했고, 도시 근교농업도 발달했다. 공업화에 따라 지역농민이 농사 이외에 할 일이 많아지면서 농외소득이 발생했다. 농외소득은 도시근로자의 높은 소득과의 격차를 줄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일본 농업은 역시 소농위주였다. 일본의 영농주가 농사를 직접 짓는 비율은 10%밖에 되지 않고, 90%는 가족이 농사를 짓고 별도 직장이 있다. 그래서 호당 경작면적이 1~2ha인 농가가 50년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이다. 농정당국은 적은 농지면적을 보유한 농가와 도회지 소득과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고미가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농업기술과 농업방식면에서 일본과 차이가 없다. 단지 농외소득에서 차이가 난다.
그 이유는 첫번째, 봉건시대 역사가 달랐다. 일본이 막부를 중심으로 하는 지방분권제였다면, 한국은 조선시대부터 중앙집권제였다. “사람은 태어나서 서울로 보내고, 말을 제주도로 보낸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출세를 하려면 공무원이 되어야 하는데 대표적인 제도가 과거제도였다. 지방에서 먹고 살만 한 것이 일본보다 절대 부족했다.
둘째, 지세조건이 다르다. 한국의 제조업은 60~70년대 박정희 대통령때 기초를 만들었는데, 당시 조성된 공단은 포항, 울산, 부산, 여수 등 동해안과 남해안에 집중되었다. 서해안지역은 조수간만의 차로 항구가 들어설 조건이 아니다. 더군다나 한국의 평야지대는 전부 서해안지역이다. 따라서 벼농사 이외의 농외소득이 없다.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만 지역에 남아 농사를 짓지만 젊은 사람들은 전부 도회지로 갔다. 현재 도농간의 소득격차와 농촌인구의 고령화 문제는 동북아시아 3개국중 가장 심각하다.
중국의 경우는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서 한가지 사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모택동 집권후 계획경제하에서 농촌에서는 집단농장을 운영하면서 지주ㆍ소작인의 조직이 붕괴되었다. 농지개혁이 자연스럽게 되었지만 집단농장의 비효율적인 운영으로 농지면적과 생산성이 늘지 않았다. 모택동 통치 30년간 농업인구가 5억에서 8억으로 늘었으며, 호당 경지면적은 계획경제 이전 0.8ha였으나, 지금은 0.4ha로 한국의 1.4ha보다 영세농이다.
모택동 사후 집권한 등소평은 1978년 남부지역인 심천을 경제특구로 지정하여 ‘흑묘백묘론’을 내세워 한국의 성공사례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이는 지구상의 공산주의가 돌아서는 계기가 되어 이후 베트남, 소련이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게 되었다. 심천을 비롯한 강동성과 절갈성 등 남부 공장지대는 손재주가지고 만드는 노동집약적인 제품들을 만들고 있다. 농외소득으로 도농간의 격차를 줄여나갔다. 현재 절강성에 농외소득이 농업소득의 4배 수준이다.
티벳, 신강성, 내몽고 등 서북부 변두리 지역은 비가 적게 와서 논밭이 적고 초원이 많고 인구밀도도 적다. 이들은 도농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낙농이 방식이었다. 넓은 초원에 옥수수를 재배하여 젖소를 사육했다. 생산된 신선우유는 상해지역에 팔아 이익을 남기고 있다.

한국의 도농간의 소득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나는 국가별 평균치를 가지고 얘기하고 있으며, 내 책은 문제를 제기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평균치를 가지고 농업을 말하자면 농업은 희망이 없다. 그러나 개별적인 사례를 보자면 별별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긴다.
농업인구를 구분할 때 60대 이상의 계층과 영농후계자로 구분할 수 있다. 60대 이상의 노년층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에 앞장섰던 애국자였지만, 지금은 활동력이 떨어져 농업 평균을 까먹고 있는 계층이다. 이들은 농업정책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그러나 젊고 활동적인 영농후계자들은 다르다. 한국농수산대학에 입교한 영농후계자 1442명의 통계를 보면 호당 평균 경지면적 3.3ha로 전국평균 1.4ha의 2.4배이고, 2007년 현재 자산액은 일반농가의 2배인 8억이며, 호당소득은 7,085만원으로 부농의 조건을 갖췄다.
농정당국은 농업정책을 영농후계자들을 중심으로 수립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농지를 보유했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땅을 모아 농민후계자에게 15ha씩을 모아주는 등 농민후계자 중심의 농업정책은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하다. 또한 “푸른 공간, 살기편한 농촌”을 가꾸어야 농촌에 살 사람이 생긴다. 정부는 사회간접자본을 확충시켜 물리적 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드는 것도 도시민들이 농촌으로 이주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실 말씀은?
   
▲ 박진환 박사와 부인 이귀임 여사의 다정한 모습. 이귀임 여사는 박진환 박사의 연구와 저술활동에 조용한 조력자이면서 2009년에만 10회 이상의 전시회를 가진 여류화가다.
대한민국은 아무런 지하자원도 없이 인적자원만으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 앞으로도 인적자원만으로 계속 경제가 발전해야 하는데, 이는 중국에 먹히지 않기 위함이며 북한에 도움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과학기술이 선진화 되어야 한다. 이 부분은 내가 아니더라도 더 훌륭한 사람이 많으므로 생략하기로 하고,
둘째로 국민의 생활신조가 선진화 되어야 한다. 1970년대 새마을 정신인 근면ㆍ자조ㆍ협동을 헌신짝처럼 버리면 안된다.
영국은 노조활동이 심해 경제위기가 극심했던 1970년대 대처 수상이 집권하면서 내세운 슬로건이 “근면, 자조, 의무”였다. 이는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전세계 식민지를 만들었던 통치이념으로서 남에게 요구하고 고함지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미국은 베트남 패전후 국민들이 사기가 저하되었을 때 여론은 “애국심과 인내력이 모자란 것이 미국의 약점이다”라고 분석하여 “인내와 극기”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새마을 정신은 기독교의 청교도 정신과 같다. 부존자원이 아무것도 없는 스위스가 정신력을 가지고 선진국이 된 것은 청교도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청교도 정신은 ‘부지런해야 하고 자기할 일 자기가 하고 낭비하지 않고 절약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선진국도 나라가 어려워지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찾는 것이다.

박진환 박사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경제학과 졸업 (1952)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대학원 농업경제학과 석사ㆍ박사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교수 (1957~1970)
대통령 경제담당 특별보좌관 (1970~1979)
한국농업경제학회 회장 (1985~1986)
농협대학 학장 (1980~1992)
북방농업연구소 회장 (1995~현재)

 

김신근 기자 pli004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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