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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장수천 3] 샘물사업 대법원 마침내 허용판결, 노대통령 장수천 대표이사에 홍경태 씨 임명

기사승인 : 2017-12-05 20:35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 소장

노 대통령은 5억5000만 원을 추가로 투입하고 1996년 12월 자신의 후원회 사무국장 출신 홍경태(청와대근무)씨를 회사 대표로 앉혔다.명색이 대표이지 원자재 구입부터 자금확보, 대리점모집, 판매망 구축, 상표 및 디자인 등 온갖 일들을 해치워야 했다.
96년은 총선이 있었던 해로 노대통령은 부산지역에 출마했으나 또다시 실패하고 만다.김대중 前대통령이 국민회의를 창당하고 민주당은 두동강이 나고 그런 와중에 노대통령은 DJ보다는 민주당으로 남았다.
총선결과도 국민회의는 제 1야당이 된 반면 민주당은 꼬마민주당으로 전락하고 만다.이때 먹거리를 위해 서갑원, 정윤재, 황이수, 최동규씨 등 노대통령의 측근들도 제각기 살길을 찾아 흩어지고 만다.
방황과 빈곤의 삶속에서 노대통령은 장수천이란 생수회사는 대박이며 미래의 정치자금을 만들 수 있는 튼실한 기업으로 떠올려졌다. 이리저리 알만한 사람들을 만나 샘물사업에 대한 전망과 조언을 받았기에
더욱 장수천에 거는 기대는 컸다.
하지만 설악샘물을 직접 운영하는 김노식 전의원과 함께 또 한사람의 샘물 사업에 대한 조언을 한 인물이 있다.당시 플라스틱협동조합 이사장이던 이국노 現 싸이몬PE파이프 회장이다.이 회장은 곽결호 전환경부장관과도 친분이 있으며 최시중 씨 등 현 정치 중심인물과도 상당한 인연을 맺고 있는 인물이다.
노대통령과 이국노회장과의 만남은 우연한 기회에 평창동 인근에 있는 올림피아 호텔사우나에서이다. 언론을 통해 서로를 알고 있었지만 대면은 처음이었다.이때 노대통령은 이국노 회장에게 샘물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을 개진한다.
이국노 회장은 당시 플라스틱협동조합의 감사로 있는 크로바 강선중 대표의 생산품과 연결된 조합차원의 대박나는 사업을 시도했다가 2년 만에 거덜난 상태였다. 그것은 북한의 신덕샘물을 수입하여 판매함으로써 조합차원의 부대사업을 하자는 야심차면서 획기적인 계획이었다.
북한에는 김일성 등 중심인물들이 마시고 있는 신덕샘물과 묘향산샘물, 칠보산샘물 등 3~4종류의 샘물을 생산하고 있었다.
신덕샘물도 중국이나 외국인들을 위한 수출용과 주석궁에 반입되는 물, 그리고 주요공관과 백화점등에 납품되는 3종류의 신덕샘물이 생산되고 있었다.
주로 유리병에 담아 판매되고 있었는데 이국노 회장은 생수용기를 이북에 공급하고 여기에 물을 담아 국내에서 판매해 보자는 전략이었다.더구나 북한물이라면 우선 이북출신들이 애향심으로 생수를 구매 할 테고 북한물이 남한물보다 신선하고 맛있을 것 같은 이미지 홍보로 전략을 세우면 타 신규샘물보다는 경쟁력이 잇을 것 같다는 마케팅전략이었다.
크로바 케미칼은 76년 설립한 각종 화학물질 용기 전문회사로 PE를 소재로 한 샘물용기도 개발하여 90년대 초반부터 생산보급하기 시작했다.다른 용기들이 주로 화학약품 용기지만 샘물만은 식수용기로 위생과 안전에 신경을 써야 했는데 크로바가 생산하기 전에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거나 유리용기로 활용되어 왔다.
유리용기는 무게도 나가고 깨질 위험이 높아 무거운 생수용기로는 매우 부적절했다. 그런 차에 크로바케미칼이 PE재질로 만든 샘물용기를 만들어 국내 샘물회사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샘물용기는 급속도로 확산되어 가고 이런 기업 매출신장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같은 조합원사이며 조합의 감사인 강선중 회장이 용기를 책임지고 공급하고 조합은 북한의 샘물을 남한에 들여와 판매한다는 전략은 당시로서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 중에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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