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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은 여행이어서 아름다웠더라

기사승인 : 2017-12-05 20:36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 류외향(시인)

내친 김에 신혼여행기를 길게 쓰기로 한다. 독자들의 응원과 기대에 힘입어 놀 수 있는 만큼 놀다가, 쉴 수 있는 만큼 쉬다가 마라도로 들어가기로 한다. 신혼여행 때 들고 다니던 여행 가이드북과 사진을 꺼내 찬찬히 훑어보았다. 당시의 일정표도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데, 이십 년 가까이 사용해온 데스크탑이 연로하여 전원이 안 켜진 지 오래다. 언젠가 다시 가게 되면 그때 전원을 고치리라. 그 일정표를 따라가면 지금도 가방만 싸면 떠날 수 있을 만큼 세세하게 짜여 있다. 물론 2년만 더하면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흘렀으니, 시간이 멈춘 나라라지만, 거기도 어쩔 수 없이 많이 변했더라. 여행객이 늘어나니 없던 직항이 생겼다. 저가항공사도 취항하여 시기를 잘 잡으면 네 식구 비행깃값이 예전 우리 둘 비행깃값보다 싸다. 이 아니 갈 수 있겠는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 근 3년을 라오스 향수병에 시달렸다. 언젠가 다시 가리라, 가리라 하였으나 8년을 채우고도 못 떠나고 있다. 라오스 이야기를 쓰다 다시 발동이 걸려 이번 추석 연휴 지나고 한 일주일 문 닫아걸고 확 떠나버릴 요량으로 새벽까지 인터넷을 뒤적이다 꽃미남 연예인들이 떼거리로 다녀가는 방송 때문에 여행자들의 도시 방비엥이 그야말로 한국인 폭탄을 맞아 난리도 아니라는, 참 격세지감 느끼게 하는 소식을 이제야 알게 되어 바로 포기하였다. 가장 다시 가고 싶던 마을 방비엥은 이제 라오스 여행 목록에서 빼야겠다. 대신 그때 가보지 않았던 남부 일대와 북부 일대의 작은 마을들을 느릿느릿 돌아다녀야겠다.

우리가 넘었던 국경은 캄보디아 쪽은 동크라우인데, 라오스 지명은 븐캄인지 돈콩인지 확실치가 않다. 여행서에도 헷갈리게 적혀 있고, 내 기억도 헷갈린다. 역시 데스크탑을 고쳐야 정확하겠다. 우리가 그 다음날 아침을 맞은 곳은 팍세이고, 국경지역에서 팍세까진 썽태우로 무려 4시간이 걸린다고 적혀 있다. 썽태우는 트럭을 개조한 트럭버스보다 좀 더 큰 버스를 말하는데, 우리가 타고 간 승합차가 더 성능이 좋다고 쳐도, 최소 3시간은 걸리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까 내가 오랜 세월이 지나 대충 말한 1시간은 턱도 없는 시간이었다. 그때의 그, 끝도 없이 가더라는 게 맞는 것이었다. 그 밤을 편도 3시간을 달려 우리를 팍세에 내려주었는데, 우리가 영 하나를 빼고 협상에 이겼다고 뿌듯해하던 게 정말이지 많이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라오스 사람들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감동적이었고, 여행 내내 그들은 그러했다. 라오스의 자연도 자연이지만,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의 사람들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순박하고 사랑스러웠다.

팍세에선 오토바이를 빌렸다. 캄보디아에서 자전거 한 대씩 빌렸다가 사내의 자전거 타는 실력이 안구에 습기 맺힐 지경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라도에서 오토바이 타고 씽씽 잘도 달리기에 자전거쯤이야 했건만, 자전거 중심 잡는 일 자체가 사내에겐 운전면허 따는 일만큼 힘들어 보였다. 앞으로 달릴 줄은 아는데, 넘어질까 봐 핸들을 얼마나 꽉 쥐는지 양손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그러니 한 손을 놓고 타는 일은 꿈도 못 꾸었다. ‘이건 뭐지?’ 결혼을 하면서 느끼기 시작한 사내에 대한 당혹감의 첫 사례가 바로 이것인 것 같다. 주로 유럽 젊은이들이 몰려오는 곳이 동남아시아이고, 자전거를 타고 떼로 다니는 치들도 유럽인들이니, 유럽에서 그렇듯 캄보디아에서도 오른팔이나 왼팔을 뻗어 우회전, 좌회전을 표시하며 주행하는데, 사내는 그것이 불가능하였다. 내가 앞서서 가면서 오른팔 왼팔 깜빡이를 켜고 방향전환을 하며 가긴 갔는데, 사내는 뒤처지기도 일쑤여서 우리는 얼마 못 가 가던 길을 포기하고 자전거를 반납하고야 말았다. 반납하러 가는 그 길이 참 아득하더라.

기어가 없는 작은 오토바이를 한 대 빌려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팍세 외곽을 달렸다. 도시라고는 하지만, 자그마한 중심가를 제외하면 그냥 시골이다. 규모는 크지만, 인구 수는 얼마 되지 않아 큰길을 한참을 달려도 집 한 채 구경하기 어렵다. 그러다 과일가게라도 나타나면 가까운 어디에 관광할 만한 곳이 있다고 짐작하면 딱 맞았다. 우리는 여행서에 나와 있는 유적이나 관광지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내키는 대로 달리다 무언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들어가 보면, 역시 무언가가 있었다. 작은 폭포거나 민속마을이거나 전통음식점이 나타났다. 그리고 길가에 나와 노니는 돼지와 닭과 염소와 개와 아이들을 보느라 오토바이를 멈추는 일이 잦았고,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팍세 여행은 충분했다. 라오스에서 자라는 가축들은 울타리가 따로 없이 지 맘대로 쏘다니며 어우러지며 그렇게 살고 있었다. 우리네 시골은 옛날이라도 우리가 다 있었는데, 돼지까지 길에 나와 노는 풍경은 참 이채로우면서 평화로웠다. 그 동물들은 가축보다는 가족에 가까워 보였고, 그런 돼지나 닭도 잡아먹을까 싶었다. 그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마음결은 또 얼마나 고울까 싶었다. 라오스의 문화를 제대로 알려면 시골집에서 한달살이는 해야 하는데, 그런 여행을 하는 날이 내 생애에 있을까 싶다. 한 나라에 한 달씩 전 세계에서 살아보는 꿈을 한번 가져볼까? 이대로 망하지 않고 산다면 노후에는 가능할까? 우리 둘째에게 가업을 물려주는 그날을 기념하며 떠나볼까? 이제 21개월 된 아들녀석한테 말이다.

팍세는 쌀국수가 유명하다. 베트남의 쌀국수와도 많이 다르고, 고수 같은 향이 강한 채소도 안 들어가고 숙주도 안 들어가는데, 맛있다. 이 동네 국수집은 아침에 가장 붐빈다. 중국인들처럼 팍세 사람들도 아침을 외식으로 해결하는 듯했다. 가장 성업 중인 국수집은 아침에만 장사하고 문을 닫아버린다. 닮은 것 별로 없는 우리가 또 한 가지 닮은 게 있다면 돌아다니며 노는 방식이다. 여행도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른데, 우린 여행하면서 가장 부딪침이 없고, 한 번도 싸워 본 적이 없다. 때로는 한곳에 오래 있는 것도 좋아하고, 때로는 많은 곳을 돌아보는 것도 좋아하고, 특히나 자는 데 드는 돈 아껴서 먹는 데 쓰자는, ‘먹고보자주의’도 닮았다. 캄보디아도 라오스도 현지식이 입에 잘 맞아 즐거운 나날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현지식에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전 세계에서 재배되는 품종이 단일해져가는 것과 같은 현상으로 전 세계 음식 맛이 천편일률적이 되어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MSG와 GMO가 평정한 세계의 먹거리. 다시 라오스에 갈 궁리를 하던 중에 가장 걸리던 것이 음식이었다. 국내여행이라면 생협 매장도 전국적으로 있고, 캠핑을 하거나 펜션에서 해먹을 수나 있지만, 해외여행은 현지에서 해결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으니, MSG와 GMO를 피할 수가 없다. 라오스는 사회주의니까 GMO는 재배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정도 개방된 시장경제이므로 가공양념류는 얼마든지 수입될 것이고, 특히나 관광업이 나라를 먹여 살리는 데 GMO가 들어 있다고 제한을 두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그런 것에 내성이 거의 없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다 발병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앞서 열심히 비행깃값 비교해보고, 새로운 정보에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찾다가 슬그머니 손을 내려놓게 되더라. 몬산토가 망하지 않는 한 세계여행은 어렵겠구나 싶다. 제발 망하라고 매일매일 기도나 하는 수밖에.


국내여행도 마찬가지다. 캠핑도 좋아라 하므로, 숙박비 아껴서 각 지역마다 내로라하는 맛집은 천리 길도 마다않고 찾아갔건만, 이젠 그 재미를 빼앗겨 버렸다. 조미료를 비롯한 화학첨가물을 거의 완전히 끊은 지 6년 이상이 되니, 조미료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몸에서 반응을 한다. 일 년에 몇 번은 굶을 수는 없어 먹긴 먹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 그러면 나는 12시간 안에 뾰루지가 생기는데, 조미료의 양에 따라 뾰루지의 강도도 달라진다. 그리고 장에 가스가 차기 일쑤여서, 식구들이 힘들어한다. 아이들은 면역력이 급속도로 떨어져 곧잘 감기가 온다. 남편은 심하게 졸음이 오거나 장이 아프다. 그리고 이 졸음 또는 기면증이 MSG가 아니라 GMO 때문이라는 얘기를 최근에 듣기도 했다. 후유증을 겪을 각오를 하고, 한두 끼 눈 딱 감고 조미료 음식은 먹어줄 수 있지만, GMO에 이르면 절대 허용할 수 없다. 요즘은 첨가물이 곧 GMO이고, 외식이 곧 GMO 다량 흡입의 지름길이니, 우리는 도시락을 싸거나 직접 해먹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몬산토가 우리 삶에 끼친 악영향이 이리 크다. 매일매일 망하라고 저주를 퍼부어 주어야 한다.

그래도 해외여행을 가려면 GMO Free 선언을 한 유럽에나 가야겠는데, 유럽은 그다지 매력이 없다. 유럽의 유적이나 문화재는 기실 몇 백 년에 걸친 식민지배를 통해 쌓은 부 때문에 얻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에 감탄하고 부러워하는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직장생활하면서 운이 좋게도 유럽의 웬만한 나라는 다 돌아보았는데, 그때도 난 참 재미가 없었고, 불편했고, 힘들었다. 홈스테이를 하면 좀 달랐을까 모르겠다만, 여하튼 그곳에서는 사람 냄새를 느낄 수가 없었다. 라오스는 달랐다. 여긴 무언가 다 부족하고 휑하고 허술한데도 행복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늘 웃음을 머금었고, 친절했고, 순박했다. 물론 방비엥처럼 일 년 내내 여행객들로 북적이는 지역에서 상업을 하는 사람들은 딱 그만큼 웃음기가 적었고, 덜 친절했고, 덜 순박했다. 돈을 많이 버는 음식점이나 상점일수록 더 그랬다.

팍세에서 수도 비엔티안까지 가기 위해 야간침대버스를 탔다. 이것을 VIP용이라고 부르는데, 별로 편하지는 않다. 주로 여행객들이 타는 고가의 여객수단이어서 그렇게 부르나 보다. 우리나라 대형버스 정도 크기의 버스 내부를 1, 2층으로 나누어 누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12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어둑해질 무렵 타면 다음날 아침이 완전히 밝기 전에 도착한다. 우리는 맨 뒷좌석에 앉게 되었는데, 2층은 옆 좌석과 이어져 있다. 어찌 보면 가장 널찍하고 편한 곳인데, 옆 좌석에는 유럽인 커플이 탑승했다. 방으로 치자면 남녀혼숙인 셈인데, 누운 순서도 여-남-여-남 이런 식이어서, 나는 사내 옆에 다른 여자가 나란히 눕는다는 것이 께름칙해서 그 커플에게 여-남-남-여 식으로 자리를 바꾸자고 손바닥으로 자리를 하나씩 콩콩 치면서 “우먼, 맨, 맨, 우먼”이라고 했다. 그들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식으로 쳐다봤고, 나는 내 발음이 어설퍼 잘 못 알아듣나 싶어 다시 반복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피식 웃으며 “No”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별 웃기는 사람 다 봤네, 뭐 그런 표정이었다. 영어가 좀 유창했더라면 그건 당신네들 문화고 우리 문화는 다르니, 크게 무리한 요구도 아닌데 좀 바꿔주면 안 되겠냐고 일장연설을 했겠지만, 특히나 영어권 사람들에게 내가 내뱉을 수 있는 단어는 우먼, 맨, 딱 그 정도다. 거기다 그치들이 어찌나 무안을 주든지 나는 완전 저 동양의 어느 오지에서 날아온, 케케묵은 남녀유별의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한 촌뜨기가 되어 버렸다. 사내는 그 상황이 웃겨 죽겠다는 듯한 표정이었고, 사내에게까지 ‘버림받은’ 나는 에라, 모르겠다, 얼른 잠이나 들어버리자는 심정으로 최대한 구석으로 몸을 밀착하여 누웠다.

그러나 차 속의 소란은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였고, 버스 역시 출발할 기미가 안 보였다. 사람들이 다 타고서도 자리 잡고 짐 정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들 끌고 온 짐들이 어마어마했으니, 그 좁은 버스에 다 실리는 게 신기했다. 12시간을 멈추지 않고 달리니, 교대할 기사까지 탑승하였고, 내부에 화장실까지 있었다. 사람을 최대한 많이 태우기 위해 자리를 배치한 터라 화장실은 좁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거기 그런 게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버스는 출발하였고, 곧 깜깜한 밤이 되어 자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널찍한 맨 뒷좌석은 오히려 더 불편했다.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널따란 판때기를 깔아놓은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버스가 덜컹거리거나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몸이 자꾸만 앞으로 미끄러졌다. 키가 커서 머리쪽과 발쪽 여백이 거의 없는 유럽인 커플은 그다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나였다. 사내는 잠이 들었다가도 내가 미끄러질 때마다 화들짝 깨어서 온몸으로 부여잡았고, 그러는 통에 우리의 자세는 그 밤 내내 레슬링 하듯이 엉켜 있어야 했다. 남녀고 여남이고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피곤과 짜증에 시달리며 퀭한 눈으로 밤을 새다 새벽녘에야 평탄한 포장도로가 이어지면서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 같다.

12월로 접어든 라오스도 겨울을 맞았다. 낮에는 여름이지만, 아침저녁으론 제법 차다. 밤새도록 달려온 버스에서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내리니 아직 어슴푸레 새벽의 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다. 거기서 숙소까지 썽태우를 타고 달리니, 한국에서 입고 갔던 파카를 꺼내 뒤집어 써야 할 만큼 바람이 찼다. 썽태우는 짐칸 양가에 긴 벤치를 놓았고, 등받이는 쇠파이프로 난간처럼 설치해놓은 거라서, 우리나라에서 간혹 보게 되는 소 싣고 가는 트럭 비스무리해서 바람을 막아줄 것이 없다. 비엔티안은 라오스의 수도여서 제법 규모도 크고, 사원도 많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몇 박을 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에 없다. 앨범에 사원과 독립기념문 등에서 찍은 사진들이 있는 걸로 보아, 여행서에 충실한 관광을 하다 다음 도시로 넘어갔나 보다. 다음 도시는 방비엥이었다. ‘여행자들의 도시’라고 이름 붙여진 작은 마을, 유럽의 젊은이들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죽치고 산다는 곳, 거기에 무엇이 있기에 그들은 떠나지 못하는가? 그것을 보러, 우리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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