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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 에세이 - 남동생의 조언

기사승인 : 2019-09-02 15:03 기자 : 김심철

이유미 UN생물다양성한국협회 이사장/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원장.이사장/ 유미마그넷테라피 창시자

내가 처음 농업재단법인을 운영할 결심을 한 건
GMO와 화학첨과물과 농약에 찌든 먹거리에서
국민을 구하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과거엔 약으로 사람을 고쳤지만
이제는 바른 먹거리가 사람을 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 재단 이사장은 인도바나나 사업에서
돈이 곧 생기니 월 2천만원정도의
운영비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나는 액면 그대로 그 말을 믿었고
좋은 일을 하겠다고 재단의
그 간의 빚을 갚는데 4억을 먼저
썼다. 그리고 매달 최소 2천만원 적자를 메워가며
매달 잡지를 발행했다.

혹시 운영비가 부족하다면
사업에 성공한 남동생에게도 도움을 받고
나를 후원하겠다는 은사와 미국에서 연락온
목사님 등 주위사람들의 후원이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겁 없이 생각했다.

남동생은 일찍 사업에 뛰어들어
망했다가 다시 재기했다.
나는 동생의 재기에
제법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해서
동생에게 공익적인 일을 하려고하니
절반 정도를 후원해달라고 할 참이었다.

그런데 맨 처음 동생에게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누나. 사업은 매일매일 피를 말리는 일이야.
남들이 보기엔 성공했다고 하지만
한국인이 중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건
너무도 힘든 일이야.
누나가 남의 도움없이 직접 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남의 도움을 받고 하려면 아예 하지않는 편이 나아“
동생은 매몰차게 나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미국에서 날 후원하겠다고 메일을 주고받던
목사님이 사무실을 찾아온 날 나는
현미녹차 박스가 몇 개 들려진 비닐봉지를 보는 순간
남동생의 그 말이 내 뇌리를 다시 때렸다.
후원을 제법 할 것이라 믿었던 은사님도
아예 소식이 없다.

게다가 전 이사장은 여자인 나를 우습게 보고
처음부터 거짓으로 일관했던 일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터졌다.
초심을 잃고 사망한 사람의 땅을 재단에서
서류를 꾸며 인수해서 여러차례 되팔아 돈을 벌려다가
내가 도장을 뺏는 통에 저지당하자
미쳐날뛰며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외국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매일 베개를 통해 내 세포들이
벌벌 떨고 있는 파동이
내 귀를 통해 들려왔고 한 잠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은행장이었던 남편에게 배운
유일한 교육 때문에 재단의 도장을 챙겨두어
더 큰 불상사는 면한 것이다.

나는 3년 가까운 세월동안
세상에 나와 마음고생도 많이 했고
비용도 많이 지불했으며
기사를 쓰느라 밤도 많이 새웠고
돌아보면 어떻게 그 세월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고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니
정진하는 열정이 날 지금까지 끌어온 것 같다.

그 동안 나는 더 강해졌고
나의 유미테라피는 더욱 강력해졌다.
그리고 잡지는 중단되었지만
글을 올리면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많은 친구들이 내 글을 통해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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