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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 에세이 -엄마의 유언

기사승인 : 2019-09-02 15:18 기자 : 김심철

이유미 UN생물다양성한국협회 이사장/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원장. 이사장/유미마그넷테라피 창시자

생일날 미역국을 먹으며
엄마의 사랑과 희생을 생각할만큼
철이 들었을 때
이미 엄마는 가시고 안계셨다.

울 엄마는 50을 못 넘기고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불쌍한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여
쌀 포대를 가져다주다가
나중에는 아예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원래 5남매를 둔 엄마는
20명 내외의 사람들의 밥을 짓고 손빨래를 해댔다
함께 사는 학생의 학비를 벌려고
몰려 파출부를 나갔으며
잠도 제대로 못 자며 사셨다.
그러면서 매일 찬송하고, 기도하고
금식을 밥 먹듯 하셨다.

나는 그런 집안이 싫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반항하며 속을 많이도 썩였다.
엄마가 암에 걸려 죽어가던 때
엄마가 천국에 조금 먼저 가는 거라고 말하는
엄마의 형제자매라는 사람들에게 대들었다.

“그렇게 좋은 천국이면 당신들이 가요.
왜 우리엄마가 가? 천국이 있어?
하느님이 있어? 모두 거짓말이야!
하느님이 진짜 있다면 착하게 살고
하느님만 아는 엄마에게 지금 기적이
일어나야지! 엄마가 죽어가잖아!!!
하나님? 그 거 다 사기야!!!“

나는 기가 막힌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거칠게 대항했지만 기적은 나타나지 않았고
엄마는 결국 우리 곁을 떠나갔다.
.
엄마는 몇 차례 혼절했다 깨어나셨는데
“하늘의 밝은 빛을 따라 훨훨 날아가는데
유미 우는 소리가 들려서 그만 내려왔어“
하셨고, 나중엔 동생들이 울면서 나에게 부탁했다.
“언니! 그만 해. 엄마가 편히 못가시잖아!”
평소 청개구리고 속 많이도 썩였던 큰 딸은
엄마를 그렇게 허망하게 보냈다.

엄마 가시고 한 삼년을 우울증으로 시달렸다.
엄마 무덤에 함께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정신줄을 놓고 살았다.

죽어가던 엄마는 나를 불러
조그만 목소리로 말하셨다.
“유미야. 크고 좋은 집에서 사는구나!
걱정이 없네,“ 나는 황당했다.
아빠가 반대하는 결혼으로 나는
단칸방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엄마는 계속 말씀하셨다.
“유미야. 하늘이 준 네 이름이
龍仙이니 아호로 써라!“
“우리 유미는 참 이지적으로 생겼는데
너무 감정적이라 걱정이 되“
그 말씀이 엄마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나는 지금 엄마보다 10살이나 더 먹어
엄마가 평소 그토록 바라시던
이 땅에서 천국을 이루는 일을 하고 있다.
질병 없는 세상. 서로 상생하며 서로에게
수호천사가 되어주는 세상
천국은 하늘 위가 아닌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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