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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택의 연예비사] "국민MC 송해 만든 건 9할이 파란만장 인생사"

기사승인 : 2018-12-11 16:30 기자 : 일송재단 국제개발원

▲ KBS 전국노래자랑 MC 송해 [뉴시스]

 

세계문화예술계에 한류열풍이 뜨겁다. 오늘의 한류열풍은 어려운 시절을 극복해온 대중예술 선배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예술인들이 딴따라라고 멸시받던 1960년대에 주간한국 연예담당 대중예술을 지면화 시킨 언론인이 있다. 후배 연예담당 기자들은 그를 연예기자 1호라 말한다. 한국 대중예술의 산증인 정홍택 전 기자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연예비사를 알아본다. [편집자주]

 

전국~~~ 노래자랑. 경쾌한 배경음악이 나온다. KBS 장수 프로그램이다. 일요일 낮 시간이 즐겁다. 왜? 출연자가 재미있어서. 서민들의 삶이 배어 나와서. 소개되는 풍경이 아름다워서. 모두 맞는 얘기다. 이런 요소가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또 다른 요소가 있다. 프로그램 MC의 구수한 진행이다. 진행자는 키가 작다. 나이도 많다. 90이 넘었다. 잘 생기지 못한 얼굴이다. 배도 나왔다. 화면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다. 그래도 시청자들은 좋아한다. 


그 진행자가 누구일까. 송해이다. 시청자들은 국민 MC라고 부른다. 왜 그럴까. 송해를 보면 편안해 진다. 진행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출연자와 함께 웃는다. 함께 울기도 한다. 할아버지의 푸근함이 있다. 정 많은 아버지 같다. 젊은 오빠 같은 낭만이 있다. 어릴 적 친구 같다. 송해는 이런 진행자다. 인생을 함께 공유하는 우리의 이웃이다. 


송해의 이런 진행은 어디서 나왔을까. 파란만장 인생사에서 나왔다. 송해는 피난민이다. 북한에서 음악학교를 다녔다. 혼자 넘어왔다. 가난했다. 밥을 못 먹었다. 유랑극단을 따라 다녔다. 


노래를 불렀다. 노래로는 앞길이 안보였다. 코미디언으로 전환했다. 천상의 콤비를 만났다. 박시명 이었다. 송해·박시명 쇼는 신선했다. 말로 하는 코미디였다. 시대적인 멘트를 짧게 표현했다. 관객들의 인기를 끌었다.


60년대 초에 뜨기 시작했다. 영화관 쇼 무대에 올랐다. 스카라. 피카디리. 국도극장 무대를 휘저었다. 지금은 사라진 추억의 장소이다. 송해·박시명 이름이 알려졌다. 두 사람은 애주가였다. 둘은 술을 많이 마셨다. 허름한 선술집이 단골이었다. 을지로 6가 수원집. 주인장이 잘 해줬다. 술 인심이 좋았다. 더 좋은 게 있었다. 코미디 아이템의 보고였다. 손님들이 세상사 얘기를 전해줬다. 술을 마시면서도 아이템을 찾아냈다. 


호사다마일까. 하늘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박시명이 세상을 떠났다. 40대 젊은 나이에. 송해는 망연자실 했다.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아무도 만나기 싫었다.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연예생활을 중단했다. 동료들이 찾아왔다. 힘내라고. 정신을 차렸다. 박시명 없이 홀로서기를 했다. 진행 방법을 바꿨다. 간단하고 짧게 진행했다. 같이 얘기하던 박시명이 없어서. 반응이 좋았다. 지금도 송해의 진행은 간결하다. 여기에 타고난 재치가 더 해졌다. 이런 노력이 오늘의 송해를 만들었다.


어려움을 극복한 송해에게 또 시련이 닥친다. 말로 표현 못할 아픔이 왔다. 3대 독자 아들의 죽음이었다. 하늘이 무너졌다. 땅도 꺼졌다.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아들의 영정을 차마 쳐다보지 못했다.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모진 목숨은 살아야 했다. 부인과 딸을 위해. 다시 한 번 정신을 가다듬었다. 자신의 아픔을 시청자의 즐거움으로 승화시켰다. 송해는 변함없이 전국~~~노래자랑을 외쳐댔다. 자식 잃은 부모의 모습이 아니었다. 언제나 기쁨 주는 예술인의 자세였다. 그래서 송해의 위대함이 돋보인다. 


송해의 오늘을 지켜준 동력은 무엇일까. 전국노래자랑과 술이다. 송해에게 전국노래자랑은 생명이다. 전국노래자랑이 아니었다면 어찌 됐을까.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었다. 연예계 은퇴는 이미 했을 거고. 


전국노래자랑은 곧 송해다. 송해가 없는 전국노래자랑은 상상이 안 된다. 


송해의 소주 사랑도 삶의 일부분이다. 송해는 소주만 마신다. 젊어서부터 소주만 마셨다. 옛날 생각이 난다. 젊었을 때 송해, 박시명, 필자 셋이서 모이면 최소 30병씩 마시곤 했다. 수원집에서. 주인이 그만 마시라며 쫓아냈다. 송해는 요즘도 하루 3병은 마신다. 도수 높은 소주로만. 혹자들은 얘기한다. 90나이에 그게 가능하냐고. 가능하다. 왜 그럴까. 타고난 건강 체질 덕은 분명하다.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보자. 지난 모진 세월을 술 없이 버틸 수 있었을까. 이해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필자는 송해의 주량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건강하다는 증거일테니까.


송해는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특유의 친화력을 앞세워. 원로연예인들의 모임인 상록회 회장을 15년간 수행하고 있다. 매년 많은 기부금을 내며 연예인들의 노후에 즐거움을 주고 있다. 기부금만 내는 것이 아니다. 회원이 안 나오면 꼭 확인을 한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 위로를 한다. 


가장 서민적인 연예인 송해.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 송해. 허름한 밥집에서 소주 마시기를 좋아하는 송해. 


우리에게 다가선 송해는 어떤 사람일까.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다. 눈물이 많다. 같이 있노라면 우는 모습에 덩달아 울게 된다.


송해의 눈물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 지난 90년 삶의 회한이 녹아 있다.

 

UPI뉴스 / 정리=김병윤 기자 bykim7161@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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