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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과 한국 사이에 「꽃의 기원 논쟁」은 이렇게 오래 계속되는가

기사승인 : 2017-04-02 17:40 기자 : 심승보 (ttotty7777@daum.net)

なぜ日本と韓国の間で「桜の起源論争」はこれほど長引いたのか
桜を愛でる文化は日本が育てたが…

 

왜 일본과 한국 사이에 「꽃의 기원 논쟁」은 이렇게 오래 계속되는가


벚꽃을 사랑하는 문화는 일본이 키웠는데...


2019年 3月 31日 青山 潤三(아오먀마 준죠) 번역 오마니나

 


문화로서의 벚꽃, 식물로서의 벚나무

 

작년 봄, "중국인도 한국인도, 일본의 벚꽃이 신경쓰여 어쩔 수 없는 이유"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다행히 많은 독자들이 읽어준 것 같아 코멘트도 많이 받았습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이, "일본의 멋진 벚꽃문화를 중국이나 한국 관광객들을 알 리가 없다"...…라고 하는 듯한, 자칫하면, 이웃나라들에 대한 차별이라고도 받아 들일 수 있는 코멘트가 적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필자도, 그러한 의견의 전반 부분에는 찬동합니다. 벚꽃을 친근한 존재로 키워낸 것도, 세계에 자랑할만한 문화로 발전시킨것도, 틀림없이 일본과 일본인입니다.

 

그러나, 필자가 전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벚꽃도(당연한 일이지만) "원래는 야생식물이다"라는 것. "벚꽃문화"를 말하기 전에, "벚꽃문화는 일본 만의 것이지만, 야생식물으로서의 벚나무는, 아시아의 공유자연재산이다."라는 사실을 우선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왕벚꽃 "기원논쟁"의 그 후

 

"벚꽃의 기원"에 관련되는 논쟁에 대해서, 재차 정리해 둡시다. 필자의 견해는,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야생생물로서의 벚꽃은, 일본에도 중국에도 한국에도 재래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따라서, 그런 차원에서 보면, 동아시아의 어느나라도 "벚꽃의 발상지"라고 주장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2) "벚꽃을 즐기는"습관이 폭넓게 대중에게 널리 확산된 것은, 일본독자의 문화라고 해도 좋다.
(3)일본에서 작성(作成)된 품종인 왕벚나무가, 현재의 "벚꽃을 즐기는"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일본과 한국의 사이에서는, 오랜동안 "왕벚나무(소메이요시노)의 기원"이 쟁점이 되어 왔습니다.한국에서는 "왕벚꽃은 제주도의 야생벚나무다"라든가, "한국에서 사랑하고 있는 왕벚나무가 소메이요시노의 기원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미 결말이 났습니다. 소메이요시노가, 일본의 이즈 제도 주변지역의 야생집단(오시마자쿠라)과 혼슈의 집단(에드히간)의 교배에 의해 만들어진 품종이라는 것은, DNA 해석에 의해 증명되고 있습니다.

 

또 지난해 9월에는, 한국에서도 "소메이요시노와 왕벚꽃은 다른 식물이다"라는 견해가 보도되면서, 서서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중앙 일보는,『 제주인가 일본인가?...소메이요시노 기원을 둘러싼 110년 논쟁에 종지부』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연구팀이 실시한 게놈 분석 결과를 보도했다. 한국에서는, 동 국의 제주도에 자생하는 "왕벚나무(원 봉나무)"가 소메이요시노의 기원이라는 설이 널리 믿어지고 있지만, 이번 분석에 의해 "제주의 왕벚꽃과 일본의 소메이요시노는 분명히 다른 별개의식물이라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그 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지인『게놈 바이올러지 』9월호에 게재되었다〉(뉴스위크 일본판, 2018년 9월 19일 "소메이요시노 한국 기원설에 종지부? 일본문화의 기원을 둘러싼 한국 여론에 변화의 조짐인가"에서)

 

그러나, 왜 "소메이요시노"와 "왕벚꽃" 을 둘러싼 논란은 이렇게 오래 끌었을까요? 또한 확실히, 이 2개 식물의 외형은 비슷하지만, 그것은 어째서 일까요.

 

그것을 알려면 "벚꽃/벚나무"라는, 2개의 다른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東京・千鳥ヶ淵の桜(도쿄・치도리가후치의 벚꽃)(2018年撮影)

 

동아시아에 퍼져있는 야생 벚꽃

 

하나는, 통상 화제에 오르는, 인간사회의 생활권에서의 "벚꽃". 소메이요시노는 에드히간과 오오시마자쿠라다는 2가지의 야생종을 인위적으로 교배한 품종이며, 칸자쿠라, 시구레자쿠라, 야에자쿠라 등도 생물학적 분류라는 의미에서의 "종(種)"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육성한 "같은 외관을 가진 품종의 총칭(속칭)"입니다.

 

일반적으로 "벚꽃"이라고 불리며 사랑받고 있는 대상은, 이러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품종"군입니다(편의상, 한자의 "벚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수는 아직도 늘어나고 있고, 일설에는 현재, 일본에서만 1000종에 가까운 벚꽃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야생생물으로서의 "벚나무"입니다.

 

"사쿠라속(属)"이 나타내는 범위는 연구자에 따라서 다릅니다. 좁은 의미로 파악하는 경우는 이른바 "사쿠라"류 만이 포함됩니다만, 넓은 의미에서는, 그외에 여러가지 친숙한 식물을 포함해, 각각이 "아속(亜属)"에 놓여집니다.

 

대표적인 그룹에는, 스모모아속(스모모와 플람), 안즈아속(매화나 살구), 아몬드아속(복숭아와 아몬드)등이 있어, 여러 과일이나 너트(콩류)가 속합니다(일본에는 모두 야생하지 않습니다).

 

사쿠라아속 중에서도, 유럽이나 중국에 있어서는, 일본에는 야생하지 않는 세이요우미자쿠라나 카라미자쿠라 등의 과실(즉, 체리)을 먹기 위해 재배되고 있는 종이 주류입니다. 예를들어 중국 도시의 슈퍼마켓에 가면, 여러 종류의 "체리"가 수북이 쌓여 있고, 오지의 소수민족마을에서도 길가의 노점 곳곳에서, 다양한 종류의 "지역 체리"가 팔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쿠라속에 속하는 여러 종류의 종(種)을 우선 "식용"으로 보는 여러나라와는 달리, 사쿠라의 "꽃"에 중점을 둔 일본문화는 독특하다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한편, 일본에 분포하는 야생 벚나무에는, 야마자쿠라, 에드히간(소메이요시노의 한쪽 부모), 마메자쿠라, 치시마자쿠라, 초우지자쿠라, 강희자쿠라(일본에는 이시가키섬에만 자생한다고 한다)등이 있습니다.

 

편의상, 이러한 분류에서 본 것을 카타카나로 "사쿠라"라고 표시하기로 합시다. 이들은 생물로서 서로 가깝고, 그 때문에 교배가 가능하며, 새로운 품종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야생의 사쿠라는, 일본뿐 아니라 한반도, 러시아 연해주, 중국 대륙, 히말라야 지방, 인도차이나 반도 북부, 대만 등 이른바 "동 아시아"에 널리 재래적으로 분포하며, 일본산은 대충 10여종 안팎이지만, 더 통합하거나 세분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중국서 자생하던 야생 사쿠라의 일종

 

특히 산벚나무는, 야마자쿠라 , 카스미자쿠라, 오오야마자쿠라, 오오시마 자쿠라(소메이요시노의 다른 부모)의 4개로 나누어, 각각 독립종(独立種)으로 취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중, 전술한 것처럼, 오오시마자쿠라와 에드히간의 교배품종의 하나가 "소메이요시노"인 것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산벚나무 4종 가운데 오오시마자쿠라 이외의 3종과 에드히간 역시 교배가 가능한 것입니다.

 

즉, "소메이요시노"와 비슷한 또 다른 벚꽃이(자연적,인위적이든 상관없이)존재하고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소메이요시노와 "닮은 벚꽃"인 한국 제주도의 "왕벚꽃"은, 그런 벚꽃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 야마자쿠라와 카스미자쿠라와 오오야마자쿠라는, 혈연상 지극히 가깝고,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것이 많지만, 야생하에서는 서로 독립한 집단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것이 많은, 약간 혈연이 먼 에드히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편, 오오시마자쿠라와 에드히간(올벚나무)은 분포지역이 떨어져 있으며, 겹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이들이 교배에 성공해, 쇼메이요시노가 생겼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제주도 원산의 왕벚나무의 경우도, 섬이라는 특수한 조건 하에서, 야마자쿠라 군 중의 어느 종과 올벚나무 사이에 교배가 일어났는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왕벚꽃이 소메이요시노와 꼭 닮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소메이요시노가 아니라는 것도 확실합니다.

 

쇼메이요시노가 사라질 지도 몰라

 

현재 일본에서 자라고 있는 쇼메이요시노는, 원래는, 모든 개체가 같은 조상의 유전자를 그대로 잇고있는 "복제집단"입니다.

 

야생식물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수컷으로부터 암컷에 수분(受粉)이 이루어져 종자를 형성해, 차세대가 생겨납니다. 반면,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원예품종의 대부분은, 생식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차세대로 연결할 수 없으며, 쇼메이요시노도 접목 등에 의해서 밖에는 늘릴 수 가 없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개체 차이는 있다고 해도, 일본의 쇼메이요시노는 슬슬, 일제히 수명이 다하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조만간, 쇼메이요시노를 대체할 새로운 "감상용 벚꽃"을 만들지 않으면 안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복이 되지만, 야생 벚꽃은 일본 뿐만이 아니라, 한반도에도 중국대륙에도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생물지리적 관점에서는, 동아시아의 어느나라도 "벚꽃의 발상지"를 자칭할 권리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문화로서의 벚꽃"의 주류를 이루는 쇼메이요시노는, 의심없이 일본이 발상입니다.

 

 

만약 앞으로 쇼메이요시노가 사라진다고 하면, "문화로서의 벚꽃"을 상징하는 품종을, 인간의 손으로 새롭게 만들어낼 필요가 생겨납니다. 그 때의 스타트 라인은, 어느 나라도 같습니다.

 

중국이든 한국이든, 자국의 야생종에 근거해 "이것이 차세대 벚꽃"이라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품종을 세상에 내보낼 수 있다면, 그 때는 다시 한번 "벚꽃의 발상지는 우리나라다"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도 아닌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벚꽃문화"의 역사적 발상이(아마)일본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만.

 

마지막으로,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

 

그런데, 필자는 약 2년간 20여 차례 이 "현대 비즈니스"에 칼럼을 게재했는데, 안타깝게도 필자의 역량부족으로 이번이 "일단" 마지막 게재가 됩니다.

 

계속적으로 임해 온 중국이나 류큐의 자연에 대해서도, 도중에 종료해버리게 됩니다.기대해주셨던 독자분들께 사과드립니다.언젠가 다시 책을 읽어 주실 기회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집필해 온 기사를 통해, 필자가 정말로 전하고 싶었던 것. 그것은 확실히 말하면, "진실은 하나가 아니다" "정의는 하나가 아니다"라는 것의 확인입니다.

 

현대사회에서는 특히 미디어에 있어서는, 정보를 발신하는 측도 그것을 받는 측도, 어떠한 "답으로 직결되는 정보"만을 "가치가 있다"고 간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인간에게 쾌적한 공간을 만들어 내는, 근대적이고, 과학적이고, 능률적이고, 즉효성이 있고, 사회에 공헌하는 것 만이 요구되어, 필요 없는 것, 쓸데없는 것, 비생산적인 것은 방치되어, 배제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예를들어 관광자원이 되지않는 들과 산 등은 버려지게 됩니다.일본의 들과 산이 모두 인간의 관리 하에 놓여져, 본래의 "자연"이 소멸해 버렸을 때에는, 야생 벚꽃도 소멸해 버립니다.

 

특히 자연의 산 속에 벚꽃이 피어 있을 필요는 없다, 정원이나 공원, 식물원에 이식하면 된다는 생각도 있을 것입니다. 연구실의 시험관 안이라면 얼마든지 씨를 유지할 수 있다. 사람의 손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곤란하지 않으며, 오히려 능률적으로 좋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것은 틀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틀린 것인가--필자의 기사를 계기로, 독자 여러분도 생각해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야생벚꽃의 일종

 

https://gendai.ismedia.jp/articles/-/63837?pag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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